영어로 Blind Faith 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국 말로는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모르지만 예수님께서 복되다고 말씀하시는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앞뒤 안 가리고 무조건 믿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만나고 알려고 하는 것도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하니까 듣지 않았다가 큰일날 까봐 두려워서 무턱대고 믿기만 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부모님들 하고 함께 살 때는 성당에 오다가 나중에 대학교를 가거나 하면 더 이상 다니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면, 어릴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렇게 부모님 때문에 나오는 Blind faith 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지요. 그래서 미사에 오는 것은 물론 중요하지만 무조건 가야 한다가 아니라, 왜 가야 하는지 가서 어떻게 하느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려주며 아이들이 예수님을 향해 마음의 눈을 뜰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교회와 카톨릭 학교가 같이 해야 하는 일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우리가 보기에는 당연한 것 같지만 요셉은 정말 믿기 어려운 결정을 합니다. 이미 아이를 가지고 있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결정을 한 요셉은 과연 이 Blind Faith 으로 그렇게 했을까요? 성령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다가 큰일 날 것 같아서 받아들였을까요? 그것은 분명히 아닐 것입니다.
무턱대고 믿기만 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성 요셉은 분명히 평소에 기도와 믿음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느님의 약속을 되새기는 하느님을 아는 분이었을 것입니다. 목수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먹고 살기 위해서 많이 바쁘고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거룩한 사람과 멀어 보이는 것 같지만 하느님을 알고, 그 안에서 살아가셨던 분이기 때문에 성령께서 받아들이라고 했을 때, 알지 못하지만 어떤 하느님의 계획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고 성모님께서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신 것과 같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 요셉은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을 받아들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마리아와 어린 예수님을 사랑하고 돌보는데 모든 것을 다 바쳤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 한 것이지요. 믿음의 아버지라고 하는 아브라함과 같은 모습인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시듯이 아브라함은 희망이 없어도 희망하며 주님의 말씀을 믿었습니다. 무조건 믿는 Blind Faith 가 아니라 하느님의 사랑과 당신의 약속에 충실하심을 흔들림 없이 믿었고, 하느님과 만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을 최선을 다해서 실행할 수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살아가야 하는 모습도 그렇게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희망과 우리를 사랑하시며 함께 계시는 분에 대한 믿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때로는 우리의 마음에 들지 않거나 자신이 계획했던 일이 아니라고 해도 주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서 실행해야 합니다. 물론 세상에서 그렇게 주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두려울 수 있습니다. 악마는 계속해서 앞으로 있을 일을 걱정하게 하며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두려움을 우리의 마음안에 심어 놓으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있을 일은 당신의 뜻을 따르라 고 하시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성 요셉도, 아브라함도 앞으로 있을 일을 걱정했다면 하느님의 뜻을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 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천사가 요셉에게 제일 먼저 한 말은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다시한번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을 믿는 것은 Blind faith 가 아닙니다. Blind Faith 는 오히려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두려워서 그냥 눈을 감고 닥치는 대로 앞으로 달리려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눈을 감고 달리면 얼마 못 가서 분명하게 넘어집니다. 그래서 항상 눈을 뜨고 주님을 만나 그 사랑안에서 우리의 삶을 살아간다면 우리도 아브라함과 성 요셉과 같이 믿음안에서 하느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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