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서른여덟 해나 앓은 사람을 보시고 그에게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물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가 왜 그 벳자타라는 못 옆에 오랜 시간을 있었는지 잘 아셨고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는 그 병자가 가장 간절히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계십니다. 스스로 남보다 먼저 못에도 들어갈 수 없는 그의 상태와 다른 이들로 부터 외면 받고 있는 그의 마음을 아시고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다른 이들에게 외면 받고 있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몸의 병보다 더 큰 마음의 병이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그러한 외로움으로 삶이 망가져 가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코로나 펜데믹 때 그런 일이 많이 생겼고 더욱 사람들이 자기 중심으로 되어가면서 외면 받고 있는 이들은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자신들의 삶을 주님께서 이끄시는 데로 살아간다면 아마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외면 받지 않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이들을 먼저 챙기시고 희망을 주시며 함께 하셨는데 예수님을 닮은 사람들이 이웃을 외면 할 수 없는 것이지요. 에제키엘 예언서에서 나오는 생명을 주는 물줄기가 이 세상 구석 구석으로 흘러 들어가, 아무도 돌보지 않고 외면 받는 이들에게 까지 닿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바로 부르심을 받고 보내진 그리스도인들 입니다.
그래서 사순 시기에도 자신을 위해서만 하는 희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영적으로 그리고 물질적으로 이웃에게 다가가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에 동참한다는 것은 그렇게 형제 자매들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십자가가 당신을 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인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모습보다는 오늘 복음에서 유다인의 모습이 더 많은 이들의 삶, 그리스도인들의 삶에 가까운 것은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웃의 어려움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을 위한 것, 자신이 지키려는 것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고통에서 해방된 이웃과 기쁨을 함께 나누지도 못하고 오히려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한다고 하며 판단하는 모습인 것이지요. 그리고 자신들은 관심도 없는 일을 예수님께서 하셨다고 해서 예수님까지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웃을 외면하는 이들은 외면하는 것을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을 판단하고 험담하며 모든 것이 자기 중심이 되도록 만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절대 혼자만 잘 사는, 하느님 마음에 들게 사는 사람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사순 시기를 지내고 있는 우리들의 삶안에서 특히 내가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있는 이들이 누구인지, 외면 받고 있는 형제 자매가 없는지 살펴보며, 우리의 관심과 사랑이 예수님에게서 흘러나오는 생명의 물이 그들에게 흘러가는 수로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구하며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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