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슬기롭게 대답하는 율법 학자에게 “너는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다.” 고 말씀하십니다. 멀리 있지 않다는 말은 긍정적인 말이긴 하지만 부정적이기도 하지요. 잘하고 있지만 아직 모자라는 것이고 하늘 나라안에 있으려면 아직 더 해야 할 것이 남았다는 말입니다.
이 율법학자는 예수님의 이 말씀이 그를 기쁘게 했을까요? 그는 그 말에 지금 하는 데로 계속하면 되겠다고 하며 만족했을 까요? 아니면 계속 예수님 가까이에 머무르면서 하느님 나라에 더 가까이 다가 가려는 노력을 했을까요?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면 아마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 않는 삶 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미사에도 열심히 나오고, 봉사도 하고, 신심단체에 들어가서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예수님께서 지금 나의 삶을 보시면 너는 하늘나라에 닿아 있다고 하실 까요? 아니면 멀리 있지 않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하실 까요?
하느님 나라에 닿아 있는 사람은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계명을 지키는 사람입니다. 바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계명을 빈틈없이 잘 지키고 있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사람들의 삶에 가장 큰 어려움과 죄로 쉽게 이어지는 것 중에 하나는 이웃과의 관계입니다. 무슨 일이 있으면 미워지고, 꼴도 보기 싫고 용서는 생각도 못하고 자신만 당했다고 씩씩거리면서 사랑에는 가까이 가지도 못합니다. 그렇게 이웃을 사랑하는 것에서 멀리 있다면 당연히 하느님을 사랑하는 데도 멀리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 마음을 다 드리고 있나요? 대부분 아마 마음은 조금만 내어 주고, 목숨은 아예 내 놓을 생각은 못하고, 자신을 위한 것을 채우는 힘 밖에 없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우상이 있고 그 우상들을 조심해야 하지만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우상은 바로 자신입니다. 많은 경우 하느님 보다도 더 중요한 사람이 자신이기 때문에, 그것이 우상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물론 하느님이 먼저가 아니라 내가 먼저가 되어야 하는 이유가 다 있고, 세상에서 살아가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며 말할 수 있지만, 그렇다면 모든 것을 내어 놓고 순교한 이들은 우리와 같은 이유가 없어서 그렇게 했을까요? 그들은 가족이 없어서, 먹고살 걱정을 안 해도 돼서, 주위에서 그들에게 잘못하는 이들도 없고 미워할 사람이 없어서 하느님이 먼저가 될 수 있었을까요?
우리는 멀리 있지 않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더 가까이 다가 갈 수 있도록 계속해서 주님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며 모든 우상위에 주님을 두고 그분 만을 찾으면 주님께서는 분명히 당신 은총으로 우리가 스스로 찾아 갈 수 없는 하느님의 나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애매하게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자리에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온전히 주님안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로 우리를 위해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많은 우상과 가장 큰 우상인 자신위에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와 은총을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이웃을 향해 실천해 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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