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캐오가 왜 나무에 올라갈 정도로 예수님을 보고 싶어 했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습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는 것 밖에 알 수 있는 것이 없지요. 하지만 세관장이라는 자리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들에게 따돌림과 멸시와 미움을 받았을 것이고, 부자였지만 그런 관계들에 의해서 마음이 무거웠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성사를 볼 때까지 그것에 의해서 마음이 무거운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어떤 이들은 자신이 잘못한 것에 대해서 아무런 죄책감도 가지지 못하고 문제가 없는 듯 살아가지만, 자캐오는 ‘순수하다’ 는 뜻을 가지고 있는 그의 이름과 같이 순수한 삶을 살아가지 못했고 그의 마음은 자신이 잘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알 고 있었을 것이지만 선뜻 빠져 나올 길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나무에 올라갔고, 죄인으로 무거운 자신을 이끌고 힘들게 자존심도 내 던지고 나무에 올라갔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나무에서 내려올 때는 이미 모든 것이 가벼워진 새로운 사람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예수님을 맞아들이면서 기쁨이 가득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 회개의 증표로 자신을 병들게 했던 불의한 재산을 가난한 이들과 자신이 횡령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게 됩니다.
우리도 형제 자매들에게 잘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아니면 용기가 부족하거나 화해할 수 있는 길을 몰라서 무거운 짐을 마음에 안고 살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가서 고해성사를 보고 죄를 용서받을 수 있지만 거기에서 멈추고 내가 잘못한 이들을 찾아가 용서를 청하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예수님을 만났다고 할 수 없는 것이지요. 가서 예수님께 잘못했다고 용서를 청하고 나서도 형제 자매들에게 용서를 청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진정한 뉘우침이 아닌 것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계속 해서 마음에 짐이 될 수밖에 없고, 자유롭고 기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자캐오가 나무 위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다른 사람이 되어 내려왔듯이 우리도 고해 성사나 성체 성사를 통해서, 기도 생활을 통해서 주님을 만났다면 다른 사람이 되어 야 하는 것입니다. 조금씩이라도 변해 가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서 그냥 습관 적인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주님을 만나려고 해야 합니다.
우리가 당신을 만나려고 할 때 나무 위에 자캐오를 보고 내려 오라고 하셨듯이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만나시고 내려오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우리 마음안에 머물겠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가 변화되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러한 진정한 만남은 더 이상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형제 자매들을 위해 자신을 내어 놓을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가서 잘못한 이들에게 용서를 청하고 나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 하면서 나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나눠야 하는 것입니다. 결심을 하고 나무에 올라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일단 용기를 내서 올라가면 주님의 은총은 우리가 한 자리에 그대로 머물지 않고 변화를 통해 주님을 닮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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