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주인은 열명의 종에게 한 미나 씩을 나누어 주며 자신이 먼 고장으로 떠났다가 돌아 올 때 까지 벌이를 하라고 합니다. 아마 꽤 오랜 시간을 떠나 있었겠지요. 그리고 두 사람은 열 미나와 다섯 미나 씩을 벌어 들였는데, 한 사람은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해 놨다가 그대로 주인에게 돌려 줍니다. 그의 변명은 주인이 두려웠기 때문이라고 하지요.
열 미나와 다섯 미나를 가진 이들은 자신들의 에게 주어진 일에 충실했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며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10배, 5배나 되는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 세상을 봐도 만 불을 투자한다고 해도 그것으로 10만불, 5만불을 벌어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언제나 그렇듯이 돈을 그렇게 투자하는 것은 항상 위험 부담이 있었지만 그 두사람은 그런 모험을 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건에 싸서 보관해 두었던 종은 그가 말했듯이 주인의 눈치를 본 것이지요. 주인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자기 생각에 안전하다는 선택을 한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들 중에는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두려워서 해야 하는 일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얼어붙는 이들도 있습니다. 무엇이 옳은 선택이고 하느님의 뜻인지 알고 실행하기 보다 사람들을 더 의식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사람의 눈을 먼저 의식한다면 어떻게 가서 목숨을 내 놓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 가겠습니까? 어떻게 가서 예수님을 모르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잘 못된 길을 가며 죄에 빠져 있는 형제 자매들을 주님께 이끌 수 있을까요? 내가 이런 말을 하고 저런 행동을 하면 나를 어떻게 생각 할 까, 사람들이 나의 이런 모습을 보고 나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떻게 할 까,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다가 내가 손해를 보게 되면 어떻하나 등등, 많은 이유들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하기 보다 먼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하느님의 눈치를 봅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것인지 성찰하고 분별하기 보다 잘못할 까봐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지요. 우리가 마음을 다해서 하느님의 일을 하려고 하다가 잘못해서 실수를 하거나 잘못 선택을 했다면 하느님께서 과연 우리에게 벌을 내리시고 화를 내실까요? 사람들은 서로에게 그럴지 모르지만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그러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찾고 알려고 한다면 분명히 어떤 선택이 옳은 것이고 형제 자매들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 우리는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그랬고 사제나 수도자의 길과 평신도의 삶을 두고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느 한 길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하느님께서 밤에 활주로에 불이 들어오듯이 길을 밝혀 주시는 것을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마음이기 때문에 망설이고 또 망설이게 되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는 한 길을 선택하고 그쪽으로 발걸음을 내 딛어야 합니다.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느님을 믿고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서는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신학교 과정이나 수도원에 청원기간 은 확실하게 그 길을 가기 위한 것 보다는 계속해서 분별하고 하느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인 것이지요.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미나로 당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와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몇 배로 벌어들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은총이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눈치 보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믿음으로 용기를 가지고 주님의 뜻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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