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에게 선행을 베푼다는 것은 단순히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좋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오늘 티토서 말씀에서 모든 선행을 할 준비를 갖추라고 하시며 순종할 줄 모르고 죄에 빠져 있단 삶을 하느님께서 구원해 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잘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선행을 베풀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열명의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십니다. 그런데 그 열명 중에 사마리아 사람 한명만이 예수님께 돌아와서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고 하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머지 아홉은 어디 있냐고 하시면서 이 외국인 한 사람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냐고 하십니다.
보통 우리가 예수님과 같이 사람들에게 선행을 베풀었다면 한편으로는 그 사람들이 자신에게 고마워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다면 기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감사의 표현을 하기 위해 한 명만이 왔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왔다고 하십니다. 모든 영광을 아버지께 돌리시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같은 하느님이셨지만 겸손으로 당신을 낮추시며 세상에 오셨고, 당신께서 하신 일도 언제나 겸손으로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시고, 아버지께 순종하셨기 때문에 그 나병 환자들이 치유된 것은 하느님께서 하신 일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많은 경우 그러한 상황에서 하느님께 영광을 드려야 한다고 하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자신이 베푼 선행에 감사하는 것을 자신을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의 사람들이라면, 잘못된 것이지만 하느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베푸는 선행이 어떠한 것이든지, 오직 주님의 은총으로 가능하다고 믿는다면, 당연히 우리가 하느님께 돌아가야 하는 영광을 차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니라 자신이 형제 자매들과 관계에서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일 누가 와서 내가 베푼 선행에 감사한다고 하면 그 사람에게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고 말 할 수 있는 용기와 겸손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잘 하지 못하는 것이지만 선행만이 아니라 우리가 숨쉬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이 모두 하느님의 은총이라면 이 세상에서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제나 기도하며 우리의 마음이 하느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하느님 만이 모든 일에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기억 하도록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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