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어떤 필요한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기억이 안 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평소에 필요 없을 때는 눈에 보였는데, 막상 필요해서 찾으려고 하면 보이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면 찾다가 못 찾으면 짜증이 나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찾으면 기쁘다고 하기 보다 그것도 못 찾고 고생을 했다고 스스로 바보 같다고 생각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과 일어버린 은전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죄인을 찾으러 오셨다고 하시면서 회개하는 죄인을 보고 큰 기쁨이 하늘에 있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회개하지 않고 주님과 멀리 있을 때 주님께서 나를 찾으시는 것 같지 않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길을 잃었을 때 우리는 스스로 집을 찾아 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우리를 찾아 줘야 하는 것이고 주님께서는 언제든지 쉬지 않고 우리를 찾으십니다.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냥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기 때문에 회개하고 당신과 일치하는 삶으로 초대 하시는데 주님께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가 어떤 필요한 물건을 찾지 못할 때 짜증을 내는 듯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가 필요해서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사랑하시기 때문이지요. 어떤 부모가 아이가 사라졌는데 아이를 못 찾겠다고 짜증을 내겠습니까? 사랑하기 때문에 아무리 마음이 아파도 포기하지 않고 찾을 때까지 계속해서 온 힘을 다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위해서, 우리들을 위해서 목숨을 내어 놓으셨고, 그렇게 사랑하시기 때문에 회개하는 한 사람을 두고 온 하늘이 기뻐하는 것입니다.
양은 풀이 많은 곳에서 쉽게 산만해지고 잘못하면 무리와 목자와 떨어져서 길을 잃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와 같이 세상은 우리에게 보기 좋고 맛있어 보이는 풀과 같습니다. 그러한 것이 많기 때문에 목자를 따르려고 해도 자주 산만해지고 그러한 것에 끌려서 길을 잃게 됩니다. 특히 교회 안에 다른 형제 자매들과 함께 머무르지 않는 다면 더욱 쉽게 길을 잃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양들이 무리를 지어 목자를 따르듯이 우리도 형제 자매들과 함께 교회 안에서 목자이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목자가 양 아흔 아홉 마리를 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 나설 수 있는 이유는 양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을 때 길을 잃지 않고 더 안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유혹에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형제 자매들과 함께 교회 안에 머물러야 하는 것이지요. 자기 혼자 집에서 기도하면 된다고 하는 사람들은 이미 온갖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고 쉽게 악의 유혹에 빠지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돌아오는 형제 자매들을 보고 함께 기뻐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는 교회 안에서 살아가면서도 친한 사람들만 어울리고, 모르는 사람들은 누가 왔는지 가는지 알지 못할 때가 많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회개로 이끄는 것은 주님의 초대이지만 이미 공동체를 이루고 그 안에 있는 이들도 그들을 기쁘게 맞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에 그들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주님께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를 통한, 공동체를 통한 주님의 손길입니다.
잃어버린 양의 이야기는 아마 우리 모두에게 그다지 낯설지 않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이 비유를 많이 들어서 가 아니라 주변에 그런 양들이 많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돌아 올 수 있도록 교회를 떠나 있는 형제 자매들을 이, 우리의 아들 딸 들이 그들을 찾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고 응답할 수 있도록, 돌아오지 않는다고 짜증내고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끊임 없이 기도하며 언제나 사랑으로 다가 가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할 때 회개하는 죄인 하나를 두고 주님과 함께 진정으로 기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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