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를 들어보면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이런 저런 이유로 큰 잔치에 가지 않습니다. 그 사람들이 말하는 이유가 다 정당한 것이라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어떤 사람의 초대에 가는 것 보다 더 바쁜 일이나 중요한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을 초대하는 주인이 그들과 어떤 관계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다지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사회에서 사람들은 정말 바쁘게 살아갑니다. 매일 해야 할 일들이 있기 때문에 누군가 갑자기 나타나서 그 시간을 요구하면 그 사람이 내가 하던 것을 멈추고 시간을 내어 줄 만한 사람인가를 판단해야 합니다. 지금 사회를 보면 자신들이 좋아하는 영화 배우나 가수들, 연예인 들이 온다고 하면 하던 일도 때려치고 나가서 환호하고 사진 찍고 난리가 아닙니다. 어떤 공연에 가기 위해서나 물건을 사기위해서 밤새 줄을 서기도 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아무리 바쁘고 시간이 없다고 해도 자신에게 중요한 것, 정말로 원하는 것은 다른 것을 희생해 가면서도 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보면 복음에 나오는 주인은 사람들에게 그만한 가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금 사람들에게 외면당하는 하느님의 모습인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은 그 초대에 응답할 만한 가치가 없습니다. 당장 배부르게 해주는 것도 아니고, 잘살게 해주거나 모든 문제가 사라지게 해주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낫지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은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당신을 내어 놓으시면서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생명이 당신의 목숨의 가치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려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자신의 영광이 먼저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복음에서는 그 주인의 초대에 모여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이라고 하지요. 그들이 주인의 초대에 응답한 것은 그들이 가질 수 없는 것, 맛볼 수 없는 것을 주인은 그들에게 줄 수 있었고,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 시대에 그런 상황에 있던 사람들은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죄인이고 사회에서 외면당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생각해 보면 마음에 세상의 것이 없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세상의 것을 향해 눈이 멀어 있는 사람들, 세상이 말하는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둘러싸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상에서 할 일이 없는 사람이 아니라, 아무리 바빠도 마음을 세상 것에 두지 않고 하느님께 두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가치가 하느님께 있다는 것을 알고, 세상이 줄 수 없는 것을 하느님만이 주신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하느님의 초대에 언제든지 달려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침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앞에 다른 일들이 아무리 많아도 먼저 주님께 시간을 드릴 줄 알고, 주님 안에서 머물 줄 안다면 다른 것들이 주님보다 더 가치가 있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초대에 귀 기울이며 바쁘다고 변명하기 보다 언제나 그 초대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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