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요한 묵시록에서 보면 희고 긴 겉옷을 입고 야자수를 들고 어린양 앞에 서 있는 이들은 세상에서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하였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과 고통에 동참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흰옷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조심조심하며 이리저리 고통을 피해가려고 한 것이 아니라, 고통과 고난에 의해서 자신들의 흰옷이 피로 물드는 것을 기뻐한 것이고, 그 모든 고난의 흔적은 예수님의 피로 씻겨진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순교자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성인들은 세상에서 피를 흘렸던 그렇지 않았던 피 없는 순교를 통해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충실하게 따라간 이들인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그 길이 성인의 길을 가는 것임을 생각하지도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당을 잘나가며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자신은 어떻게 해서라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서 성인이 되겠다고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되어야 한다고 교회에서 얘기하기 때문에 막연히 되고 싶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막상 그 과정을 보면 생각을 접어 버리기 쉽습니다.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알기 어렵지 않기 때문이지요. 요한 1서의 말씀대로 세상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듯이 우리도 알지 못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기 보다 십자가의 길에서 추구하는 행복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가는 길이 다르고 지향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행복과는 거리가 먼 행복만을 바라는 것입니다. 고통과 어려움, 자신을 버리는 것 같은 세상에서 어리석은 일이 없는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게 낯선 모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성인의 길은 우리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길이기 때문이지요. 또한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모든 성인들이 우리와 함께하고 어머니이신 성모님과 함께 주님을 항해 가는 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 내가 길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느 목적지까지 가는데 숲이 길을 막고 있는데, 길이 없다면 알아서 길을 만들어 가야 하고 가다가 쉽게 길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는 길, 주님을 향해 가는 길은 이미 우리 앞에 놓아져 있고, 방해하는 악이 있지만 우리에게는 어떠한 것도 이겨 낼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이 있습니다.
우리가 결정해야 하는 것은 정말 행복해지고 싶은가 입니다. 잠시 지나가는 행복이 아니라 주님께서 약속하시는 영원한 행복을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인지 성찰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길은 세상에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를 받는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쉬운 길, 아프지 않은 길을 가고 싶어하는 바램이 있지만 성인들이 가신 길을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하며 세상에서 잃는 것이 있다고 해도 오늘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성인들에게 주어진 영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희망을 가지고 세상에서 오는 고난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러한 희망은 우리의 눈이 주님을 바라보게 하고, 우리 앞에 가신 성인들의 영광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 희망은 요한 1서의 말씀대로 우리도 그분처럼 되리라는 희망이며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우리도 세상에서 죄를 멀리하며 순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인들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쉬지 않고 하느님 아버지께 전구해 주십니다. 그들은 이제 완전하신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고 그 사랑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의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향한 희망을 가지고 교회 안에 머무를 때 우리는 아무리 큰 고통이 다가온다고 해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행복을 이세상에서도 살아가고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어린양의 피로 깨끗하게 된 흰옷을 입고 주님과 함께 완전한 행복에 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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