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는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미국에서는 주인이 집을 장기간 동안 비운 사이에그 집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나, 렌트를 준 건데 어느 때부터 렌트비를 내지 않고 눌러 앉은 사람들이 많은 곳이 있다고 합니다. 그들을 squatter 이라고 부르는데, 원래 집주인이 그 사람들을 쫓아 내거나 그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나간 사이에 집 열쇠를 바꿔 버리면 오히려 집주인에게 법이 불리 하게 되어있다고 합니다. 상식 적으로 말이 안 되지만 그런 일 들이 벌어지고 있다고 하지요. 아마도 집이 없는 사람에게도 어떤 권리를 보장해 주려고 그러는 것 같은데, 아무튼 이상한 경우도 다 있습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악한 영이 나갔던 사람은 잘 정돈되어 있었지만 악한 영이 돌아오면서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안에 자리 잡는다는 것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잘 정돈되어 있지만 주인이 없는 빈집에 들어가 눌러 앉아 버리는 것이지요. 물론 사람은 자신이 주인이라고 하지만, 사실 우리의 주인은 각 사람들이 아닙니다.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만이 온전한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악마가 나간 집에 주인은 어디를 간걸 까요? 하느님께서 주인 이시라면 계속 계셔야 하는 것이 아닐까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하느님을 주인으로 받아들이는 않는 것입니다.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다고 하지만 사실 빈집이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빈집은 갈 곳을 찾던 악마에게는 다시 들어와서 더 엉망을 만들어 버리는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집을 비워 두면 안 됩니다. 주인이 들어와서 살고 있어야지 그 집에 squatter 가 들어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계셔야지 악마가 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내가 잘 정리해 놓은 삶을 어렵게 만드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자신의 삶 안에 계시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자신이 보기에 정리가 잘 된 삶, 깨끗한 삶을 원한다면 그 곳에는 분명히 하느님은 환영받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은 잘 정리해져 있는 삶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모습만 봐도 모든 것이 정리 정돈이 잘된 삶을 사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집도 없이 돌아다니고, 나중에는 정말 처참하고 피와 땀으로 범벅이 된, 누구도 원하지 않는 십자가형을 당하셨기 때문에 겉이 깨끗한 모습이 아닌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저주받은 몸이 되셨다고 합니다. 그 누구도 아마 그런 모습을 하고 있는 사람을 깨끗한 자기의 집에 들어오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주인으로 계시는 집은 더럽고 지저분해야 합니다. 깨끗할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길이 어떻게 정리가 잘된 깨끗한 길일까요? 고통스럽고 사람들로부터 온갖 비난이 받으며 목숨을 내어 놓아야 하는 길입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들과 함께 해야 하는 삶입니다. 편하고 잘 정돈된 예수님의 길은 없지만, 깨끗하고 정돈된 삶을 버리고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순간부터 그곳은 악마에게 들어올 자리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악한 영이라고 해도 하느님께서 중심에 계신 삶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 내 마음안에 누가 자리를 잡고 있는지 성찰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으로 판단하지 말고 형제 자매들을 받아들이며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