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이들은 자신들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부모들은 보통 아이들이 해달라는 대로 다 해주지 않습니다. 때로는 때를 쓰는 아이를 달래기가 쉽지 않고 시끄럽게 될 때가 많지만 중요한 것은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는 것이지 달라고 한다고 해서, 조용하기 위해서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면 아이들이 자라면서 분명히 더 큰 문제로 발전될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도 당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 만을 주십니다. 우리 구원에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지요.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비유에서 한밤중에 빵을 구하기 위해서 벗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의 경우를 보면, 그에게 빵은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레위기 19장을 보면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와 함께 머무르는 이방인을 너희 본토인 가운데 한 사람처럼 여겨야 한다. 그를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다. 나는 주 너희 하느님이다.” 물론 이방인이 아니라 이 사람의 벗이었지만 분명히 지나가던 손님이었고 이방인과 마찬가지로 손님을 가족과 같이 대하고 사랑으로 대접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서, 하느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지키기 위해서 그는 자는 사람을 깨워서 어떻게 해서라도 빵을 얻으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철없는 아이들과 같이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을 위한 것을 얻어내기 위해 아버지께 청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당신의 뜻을 실천하는데 꼭 필요한 것을 청해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청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받아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 고통이라고 해도 그것이 우리에게 해가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고통과 십자가를 우리를 위해서 그대로 받아들이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그것이 무엇이든, 내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면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떤 미국 신부님이 어쩌다가 마더 데레사와 같은 방에 둘만 있게 된 적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자기도 모르게 마더 데레사에게 성덕의 길을 알려 달라고 했다고 하지요. 그 말을 하고 어떻게 그 말이 나온 것인지 자신도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듣고 마더 데레사는 그 신부님에게 정말 그 길을 가고 싶으냐고 물으셨고,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럼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이 무엇이든지 기쁘게 받아들이라고 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십니다. 마지 못해 내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기쁘게 주십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악마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성령으로 우리를 보호하시고 불타는 믿음을 주십니다. 우리에게는 아버지께서 주실 수 있는 가장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작 무엇을 원하고 있을까요?
철 없는 아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면 울고불고 난리가 납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관계에서 그렇지 않은지 성찰해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언제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고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의 뜻을 실천 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시고 구원의 길을 가는데, 성덕의 길을 가는데 우리는 절대 부족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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