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만일 마리아가 일이 하기 싫어서 예수님 발치에 앉아 있었다면 마르타가 예수님께 동생에게 자신의 일을 도우라고 해달라고 부탁 했을 때, 예수님은 아마 마르타가 해달라는 대로 해 주시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어보면 마리아는 편안함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 위에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때로는 사람들과 관계가 힘들어서, 복잡하고 힘든 일이나 상처를 받아서 사람들을 피하고 어디를 가거나 집콕을 하면서 사람들을 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어떤 활동이나 취미나 운동들이 현실을 피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예수님도 세상을 피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합니다. 집안에 문제가 있고 가족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피하기 위해서 집에서 나와 있는 시간이 많고 그 시간을 성당에서 봉사를 하거나 어떤 신심단체 안에서 활동하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에 마주치는 고통을 피해 보려고 신앙이나 예수님을 찾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냥 겉으로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열심히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사람으로 생각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것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다른 것을 얻기 위해서 예수님이 그 길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고통을 덜기 위해서나, 마음에 평화를 위해서나, 다른 어떤 이유가 되든, 그리고 그 이유가 정당하고 좋은 것이라고 해도 예수님을 그러한 것을 얻기 위한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우리를 다른 목적에 이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아닌 우리들을 사랑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당신과 영원히 살도록 하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온전히 우리를 향하고 있지 우리를 통해서 다른 곳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것에 목적이 예수님과 일치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다른 것을 찾고 있는 것이고, 예수님은 그 과정에 불가할 때가 많기 때문에 언제든지 자신을 위해서 삶에서 밀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갈라티아서에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을 들어보면 그에게 예수님 외에 다른 목적은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는 교회를 박해하던 당신을 사도로 부르신 예수님의 뜻에 따라서 다른 민족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일이 그에게 모든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사도 바오로의 모습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했다는 것을 보면 그 사실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사도 바오로는 가장 좋은 몫을 선택한 분이었습니다.
성모님께서도 그렇습니다. 다른 어떤 이유가 있어서, 당신의 영광을 위해서 예수님의 어머니가 되시지 않았고,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오직 주님의 뜻에 동참하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진정으로 따른다면 예수님이기 때문에 따라야 하는 것이고,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신앙 생활을 해 나가야 합니다. 그 외에 다른 목적이 있다면 비록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라고 해도 마리아와 같이 온전히 주님만을 바라보지 못할 것입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바랐습니다. 우리도 오직 예수님만을 바라는 믿음의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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