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교회의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 성인 축일입니다. 그가 두려움 없이 목숨을 내 놓으면서도 끝까지 그리스도를 증거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게 사람의 힘이 아니라 그를 가득 채운 하느님의 은총, 성령의 힘이었던 것이지요. 목숨을 내 놓았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주신 생명을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닙니다. 그만큼 하느님을 사랑하고 두려움이 없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내어 드린 것이지요.
과연 우리는 그렇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느님께 드릴 수 있을까요? 목숨은 제외하고 라도 지금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을 하느님을 위해서 포기할 수 있을까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당신 앞에 보내시며 다가오는 박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과연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들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기적을 일으키는 힘이 있으신 분인데 설마 우리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도록 두실까?’ 라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린가 하며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몰랐을까요? 두려웠을까요? 제자들마다 생각하는 것이 달랐을 것은 확실하지만, 아무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 어떻게 보면 듣고 싶지 않은 그런 말씀에 대해서 그들이 어떻게 반응을 했는지는 알수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잡혀 가셨을 때 그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오늘 이 예수님의 말씀은 그들의 마음에 닿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마음에 닿아 깊이 새겨졌다면 아무리 큰 위협이라고 해도 그렇게 예수님을 버리는 선택을 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물론 그들도 스테파노와 같이 성령의 은총으로 충만해졌을 때 더 이상 숨지 않고 나가서 용감하게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목숨을 내 놓았습니다.
우리도 그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미사때나 아니면 성경을 공부하거나 읽으면서 듣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얼마나 우리 마음에 닿아 있을까요? 말씀을 머리로는 이론을 공부해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마음에 닿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 닿는 통로는 성령만이 뚫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에 의지한다면 아무리 성경말씀을 달달 외운다고 해도 세상에 나가서 그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할 때 그러한 위협은 두려움으로 다가오고 하느님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잃고 싶지 않기 때문이지요.
스테파노가 돌을 맞으면서 한 행동은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살려고 발버둥칠 텐데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어가면서도 기도하는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가 얼마나 깊이 기도하고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언제나 아버지를 찾아 기도하신 예수님의 모습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우리의 삶을 채우시고 말씀이 우리 삶에 살아 있도록 하는 것은 우리의 기도입니다. 기도는 성령을 우리 삶에 받아들이기 위해 가장 기본적인 것이며 먼저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힘으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지만 우리의 협조 없이는 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에 닿아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느님께 그것을 허락해 드려야 합니다. 그렇게 허락하며 마음의 문을 열어 드리는 행위는 마음에서부터 시작되는 기도이고, 그렇게 할 때 성령께서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 마음안에서 살아 있도록 하시며, 당신의 힘으로 성 스테파노와 같이 죽음 앞에서도 원수를 위해 기도할 수 있고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목숨까지도 주님께 내어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묵상하는 성탄 시기의 시작에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세상에 오시고 목숨까지 내어 놓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성령의 인도로 기도생활과 말씀을 가까이 하는 삶이 우리 삶 안에 깊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은총을 구하며 주님께서 우리 마음안에 들어 오셔서 우리의 삶 모든 것을 당신 뜻대로 하실 수 있도록 허락해 드려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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