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께서는 참으로 큰일을 하셨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인간을 당신의 은총으로 가득 채우셔서 원죄 없이 잉태되게 하시고 당신 아들의 어머니가 되게 하시며 인간으로서는 당신의 구원 사업에 가장 중요하고 힘있는 분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어머니께서는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비천함을 들어 높이신 주님안에서 기뻐하며 찬미를 드릴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하신 큰 일을 보고 무엇보다도 먼저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을까요? 지금 우리의 삶이 마리아와 같이 자신의 비천함을 알고 하느님의 크심을 아는 삶일까요?
물론 자신을 돌아보며 하느님께서 나에게 어떤 큰 일을 하셨는지 의문이 들 수도 있습니다. 원죄 없이 잉태된 것도 아니고, 하느님의 아드님의 어머니나 아버지가 된 것도 아니니, 무슨 큰 일을 하셔서 우리의 삶이 성모님과 같아야 하는가 하며 생각 할 수도 있겠지요. 또한 사는 것이 힘들고, 고통스럽다면 아마 더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과연 우리에게 무슨 큰 일을 하셨을까요?
일단 성모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셨지만 우리도 주님께서 세례를 통해서 우리의 원죄를 없애 주셨고 비천한 우리를 당신의 자녀가 되게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죽음이 예약되어 있던 삶에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의 빛을 비추어 주셨습니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을 주님께서는 해 주셨습니다. 또 그렇게 될 수 있기 위해서 주님께서는 우리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서 목숨을 내 놓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이제 다가오는 성탄에 기억하듯이 하느님께서는 작고 가난한 아기로 이세상에 우리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큰 일을 하신 것이 아니라면 무엇일까요?
그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고 성모님과 함께 당신의 구원 사업에 동참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잘나서, 능력이 있어서 가 아니라 한없이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지금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주님께서는 그러한 시간을 통해서 우리가 더 당신께 의지하고 일치하도록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는 좋은 길이기 때문에 우리 삶에서 그런 고통을 없애지 않으시는 것이지요. 우리 삶에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고 당신께 초대하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우리가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큰 일을 하시는 하느님을 알고, 우리의 비천함을 진정으로 안다면 과연 성모님과 같이 하느님께 찬미 드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있을까요?
사무엘기에 나오는 한나도 그렇게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큰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고 그토록 바랬던 아이를 망설임 없이 하느님께 바칩니다. 그러한 모습 자체가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인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찬미도 기도회나 그런데 가서 하는 찬미가 아니라 우리의 삶이 그렇게 봉헌된 삶이 될 때 찬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천한 사람의 봉헌을 사랑으로 받아 주시는 것 또한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하신 더 없이 큰 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곧 다가오는 성탄에 낮아지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우리 자신을 더욱 낮추며 주님께 다가가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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