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어떤 일이나 해주거나 도움을 주는 경우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 무엇인가를 바라면서 그런 도움을 주거나 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상대 방이 고마워하지 않거나,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진정으로 이웃을 위해 사랑으로 베풀었다면 그것으로 끝나야 하는데 감정의 끈을 연결해 놓고 있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온전히 베풀 수 있는 것을 베푼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아니라고 해도 마음으로 무엇인가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마태오 복음에서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일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무엇을 받기 위해서 잘 살아야 하고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느님께 이미 감당하지 못할 만큼 사랑받고 있고, 아드님의 목숨 값으로 주님의 은총안에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아무것도 받지 못한다고 해도 충분히 받았고, 주님과 함께 머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우리는 더 바라기만 하기 때문에 하느님께 실망하고, 원망하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다고 합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은 우리가 이만큼 했으니 받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베드로가 무엇을 바라고 그렇게 말했는지 모르지만, 누가 첫째인지 논쟁을 하고, 예수님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달라고 하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아마 세상의 것을 바란 것이 아닐까요?
그러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른 제자들에게 그들이 받을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제자들이 생각했던 것과 많이 달랐을 것입니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약속하십니다. 별로 듣기 편하고 좋은 것은 아니지요. 누가 세상에서 자신의 것을 다 버리고 누군가를 따라 나섰는데, 돌아오는 것이 박해와 고통이라고 한다면, 십자가라고 한다면 그것을 누가 좋아할 까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라고 하시는데, 그것은 세상에서 나에게 주어지는 많은 재산이 아니라 교회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십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약속이 도대체 무엇인지 아마 베드로와 제자들은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의 오심으로 그들은 그때 예수님의 약속이 무엇인지 깨 달았을 것이고 기쁨으로 그 약속을 믿고 목숨까지 내어 놓았습니다.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면서 예수님께서 약속하시는 이 세가지를 다 받아들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박해는 분명히 끊이지 않고 있을 것이고, 우리는 혼자 집에서 예수님을 믿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안에서 많은 형제 자매들과 함께할 때 기쁨과 용기만이 아니라 관계 안에서 오는 어려움과 고통도 있지만, 서로에게 바라는 관계가 아니라 언제나 자신을 내어 놓는 사랑으로 함께 하는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주님의 은총으로 거룩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고,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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