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 잔인한 생각이지만 만일 예수님의 말씀대로 우리가 죄를 짓고 다시 그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해당되는 부분을 잘라 버린다면 아마 우리에게는 남아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지도 모릅니다. 물론 죄의 무서움을 모르고 그냥 세상이 흐르는 대로 몸을 맡기고 살아간다면 세상에서는 잃을 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결국에 하늘 나라를 잃고 지옥에 던져 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에게는 다행으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처참하고 잔인한 십자가형을 받으시면서, 우리의 피로 값지 않아도 되는 죄의 용서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 그러한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믿는다고 세례를 받고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 조차도 죄의 위험을 크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의 말과 같이 썩고 좀먹는 재물과 옷을 가지고 그것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을 향한 삶이 아니기 때문에 당연히 품삯을 가로채는 것과 같이 이웃을 정의롭게 대하지 못하는 것이고 자신위해 이용하기만 하는 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를 인정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며 죄의 결과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죄를 끊어 내는 것은 정말 단호함이 필요합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벼랑 사이에 팔이 끼어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도와줄 사람도 없고, 시간이 흘러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자 큰 결심을 하게 됩니다. 바로 가지고 있던 포켓 나이프로 자신의 팔을 자르고 나온 것이지요. 팔을 끊어 내는 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었을 까요? 하지만 살기 위해서 그 길 밖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살았습니다.
그와 같이 죄를 끊어내는 것은 팔을 잘라내는 것과 같이 어려운 결정일 뿐만 아니라 고통이 따릅니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끊어내고, 많은 세상의 유혹을 뒤로하고 주님께 돌아서는 것은 절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지만, 우리도 우리를 죽음으로 몰고 가는 것을 알아보고 끊어 낼 수 있는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 용기도 이미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시는 성령께서 주십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사람은 아마 자신이 팔을 잘라내고 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없었다면 그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살 수 있다는 희망이 그를 큰 고통을 이겨낼 수 있게 한 것이지요. 그와 같이 우리에게 죄에서 해방되어 살 수 있다는 희망이 있다면,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보며 우리가 생명을 얻을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면, 아무리 깊은 죄에 빠져 있었다고 해도, 우리도 주님께 용서를 청하며 죄를 잘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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