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사회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청하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탤런트가 다르기 때문에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이나 가지고 있는 것이 없을 때 도움을 청하거나 할 수 있는 사람을 고용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누구도 자신이 필요한 것을 줄 수 없는 사람이나 일을 해 줄 수 없는 사람에게 가서 그것을 해 달라고 청하지 않습니다. 간단한 예를 들면 자동차 정비를 할 줄 모르는 사람에게 자동차가 고장 났다고 하며 고쳐 달라고 하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그것은 웃음거리가 될 일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영원한 생명 주신다, 영원히 살게 해 주신다고 말씀하시는데, 당신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또 우리가 예수님께 가서 함께 머무르려고 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것을 주실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 만일 부모나, 아니면 지인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겠다고 하면 당연히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몸과 피가 생명의 양식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시면서 당신이 주실 수 있는 것,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약속하십니다. 조건은 그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고 마시며 당신의 사랑안에 머무르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진정으로 필요하고 원하는 것을 채워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런데 세상을 보면 그 영혼의 배고픔을 다른 곳에서 채우려고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은 생각하지도 않는 사람들도 많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도 하느님은 뒷전이고 계속해서 물질적인 것, 세상의 힘이나 명예, 오락이나 스포츠 등 다른 많은 것에 가서 채워 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러한 모습은 할 수 없는 사람,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는 사람에게 가서 해달라, 채워 달라고 하는 어리석은 모습인 것입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아무리 좋은 것도 하느님만이 우리에게 주실 수 있는 것을 줄 수 없습니다. 물론 세상의 것들이 모두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한 것들은 우리가 하느님을 먼저 찾고, 하느님으로부터 영혼의 배고픔을 채울 때 우리 삶안에서 제자리에 놓여 질 수 있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에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으로 채우지 않고 가서 그 빈 자리를 다른 것이나 다른 사람에게 채워 달라고 한다면 절대 채워질 수 없는 것이고, 하느님만이 주실 수 있다는 것을 기어이 무시하고 돌아서지 않으면 더욱 자신을 채우기 위해서 더 이기적으로 변해 가는 것입니다. 점점 영혼의 배고픔은 심해지는 것이고 나중에는 굶어 죽게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내려 주신 빵인 만나를 먹은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먹고 죽었지만 당신의 몸,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생명의 빵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습니다. 오직 우리를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예수님 만이 주실 수 있는 것이고, 그 생명의 빵을 받아먹을 수 있는 우리는 얼마나 복된 사람들인지 항상 기억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만이 주실 수 있는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분명히 지키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