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라면 아마 세상에서 가지고 싶은 것을 다 가질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부족한 것이 없고 큰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이방인인 그가 하느님을 경배하기 위해서 예루살렘까지 오고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세상에서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해 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높은 것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자신이 가진 것에만 만족하며 아무것도 찾지 않고 있을까요? 무엇을 찾고 있다고 해도 세상의 삶을 더 만족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이 내시가 그렇게 하느님을 찾지 않았다면 분명히 필리포스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세례를 통해서 예수님을 알고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가 당신을 찾든지 구분하지 않으시고 모든 이들을 만나 주십니다. 죄인과 의인, 부자와 가난한 이들, 건강한 이들과 고통받고 있는 이들 등, 누가 당신을 찾든지 그 찾음에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를 누구보다도 사랑하시고 우리에게 귀 기울이시는 분이기 때문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복음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배운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온다.’ 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말씀을 듣고 배우는 것은 우리 삶에서 계속되어야 합니다. 멈추면 안 되는 것입니다. 더 배울 것이 없다, 그만 배워도 된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길을 멈추는 것입니다. 배운다는 것,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을 쌓는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더 알기 위해서 멈추지 않고, 쉬지 않고 찾는 것이지요.
우리는 모두 지금 말씀안에서 살아가며 하느님을 찾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때로는 신앙 생활도 계속 반복되는 생활안에서 자동차에 크루즈 컨트롤과 같이, 아니면 더 나아가서 자율 주행 차를 탄 것과 같이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쭉 가려고 하기 쉽습니다. 복음을 전하고 세상과 맞서는 일도 힘들고 그냥 편하게 가려는 마음이 클 수 있지요. 하지만 세상의 어떤 사람이라도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 생각이 든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이제 충분하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길을 막으려는 악마의 유혹입니다. 이 세상 삶이 끝날 때까지 우리는 하느님께 더 가까이 다가 가기 위해서 말씀안에서 그리고 형제 자매들 안에서, 내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안에서 찾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지만 그 은총이 드러나는 것은 우리의 노력이 함께 갈 때 인 것이지요. 그 누구도 하느님을 찾으려는 아무런 노력도 없이 은총으로만 성인이 된 사람은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하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자유를 허락하신 것이고, 그 자유를 침범하지 않으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곳이나 상황안에만 계시지 않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고통의 순간이라고 해도, 다른 사람은 다 우리를 그 순간에 버린다고 해도 하느님께서는 그곳에 계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눈을 뜨고 찾으면 가까이 계시는 것을 알 수 있고, 진정한 기쁨이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께 가는 것은 아주 큰 걸음이 아니 여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아주 작은 걸음으로 라도 하느님을 향해 가고 있고, 하느님을 찾고 있는지 성찰하며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찾는다면 필리포스를 통해 내시를 찾아오신 것과 같이 우리 형제 자매들을 통해서 다가 오실 것이고, 따라서 우리도 다른 형제 자매들에게 주님을 전하는 사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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