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위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고, 요한은 그때부터 그분을 자기집에 모셨다고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어머니에게는 요한을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하시고 요한에게 어머니라고 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성모님께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머니를 우리 집에 모시고 계신가요? 대부분의 신자들은 성모상이나 성모님의 성화가 집에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어머니를 집에 모시는 것일까요? 어떤 본당은 특별히 한 파티마 성모님상을 교우들이 돌아가면서 집에 모시기도 하고 저희 본당도 그렇게 돌아가면서 집에 성모님의 성화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런 신심 행위에 참여 하는 것이 어머니를 집에 모시는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우리에게 어머니를 집에 모신다는 것은 바로 우리 마음에 어머니를 모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모상이 방마다 있고 여기저기 성화가 걸려 있다고 해도 마음에 모시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에 충실하지 못한 것입니다. 분명히 우리에게 어머니라고 하셨는데, 마음에 모시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어머니를 집 밖에 어디 다른 곳, 내가 불편하지 않은 곳에 두고 원할 때만, 필요할 때만 찾는 것이지요.
그렇게 우리가 어머니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있지 않다고 해도 어머니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를 어머니께 맡기셨고,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당신의 마음안에 품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당신을 집으로 초대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어머니를 우리 마음안에 모시는 길은 어떤 느낌이나 묵주기도와 같은 기도만 열심히 외우는 것이 아닙니다. 어머니를 우리 마음안에 모시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함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이 다른 제자들과 같이 도망가고 십자가 옆에 있지 않았다면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라고 말씀하실 수 있었을까요?
그렇게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서 처참하게 죽으신 예수님 곁에 있는 다는 것은 왠만한 용기가 없으면 힘든 일입니다. 세상이 손가락질하고 모욕하며 받아들이지 않고 함께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하는데, 어머니와 예수님 곁에 머무는 것은 쉬운 선택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용기도 주님의 은총이며 우리가 하려고 하면 주님의 힘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주님의 은총인 것이지요.
그리고 십자가 옆에는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형제 자매들이 함께 하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서로에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의 표징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자매들과 함께 어머니를 우리 마음안에 모시고 어머니께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보여주시기를 청합시다. 언제나 모든 것을 예수님께 향하게 하시는 어머니께서는 당신을 마음에 모신 자녀들을 그리스도를 통해서 당신과 같은 영광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