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로와 동료들은 밤새 고기잡이를 마치고 이제 정리하고 아마 집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배에 오르셔서 군중들을 가르치실 때 아마 일을 하면서도 듣고 있던 베드로의 마음이 움직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시자 밤새 아무것도 잡지 못했지만 그 말씀을 따릅니다.
아무것도 잡지 못해서 기분도 좋지 않을 텐데 누가 와서 그렇게 말한다면, 아마 그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면 다시 그물을 내리라는 것은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하며 거절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한편으로는 군중을 가르치셨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베드로를 낚으려고 하셨기 때문에 먼저 당신의 말씀으로 그의 마음을 움직여서 그의 마음이 열려 큰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 가능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기적을 보고 두려워 예수님께 자신이 죄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두려워하지 말고 이제부터 사람을 낚을 것이라고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릅니다.
우리는 죄가 있기 때문에 예수님의 일을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죄가 많아서 예수님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같이 배신을 했어도 예수님의 자비는 베드로의 그 죄가 교회를 이끌며 당신의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죄가 많다고 하면서 봉사하지 않으려고 하거나 미사에 나가지 않거나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할 마음이 없는 것에 대한 변명일 뿐인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서 놓고 싶지 않고 버리고 싶지 않은 것에 대한 변명인 것입니다.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고 복음은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따른다고 하는 우리들은 과연 모든 것을 버렸을까요? 세상에서 의지하고 있는 모든 것을 예수님을 위해서 버릴 수 있을까요? 고기잡이 배와 그물 등은 베드로와 동료들에게 생명과 같이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모든 것을 버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삶을 보면 예수님보다 중요한 것이 아마 많을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 하는 일이라고 해도 예수님보다 중요할 수 없는데, 우리는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 밖에도 삶에서 물론 중요한 일들이 많이 있고, 때로는 그 일들이나 어떤 사람들을 우리는 하느님 위에 선택하기도 합니다.
하느님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보다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주님의 말씀에 마음이 움직인 베드로와 같지 않고, 내 일이기 때문에 내가 더 잘 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듣고 싶은 것만 듣고 그렇지 않은 것은 흘려버리며 마음이 닫혀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는 지혜롭게 되기 위해서는 어리석은 이가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리석음은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따라 모든 것을 버리는 것입니다. 세상은 어리석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참된 지혜인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듣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해도 마음을 열고 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안에 머무를 때 우리의 마음은 그 말씀에 의해 움직일 것이고 아무리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고 해도 부드러워 질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 모든 것 위에 주님을 선택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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