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사람들을 알게 되지만 물론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어디서 온 사람들인지, 무엇을 하는 사람들인지, 어디로 가고 있는 사람들인지 그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지요. 우리와 상관이 없는 이들이기 때문에 알 필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잘 아는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길을 가고 있거나,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거나 하며 삶에서 만나는 사람들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 중에서도 때로는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위로부터 태어난 이, 영에서 태어난 이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과연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누가 위로부터 태어나고, 누가 영에서 태어난 이며, 어떻게 위로부터, 영에서 태어날 수 있을까요? 바로 세례로 새로 태어난, 새로운 생명을 얻은 그리스도인들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니코데모가 이 대화에서 상징하는 세상은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듯이 세례로 태어난 이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알지 못한다는 것은 세상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제 교황청 신앙교리성 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선언문 Dignitas Infinita 를 발표 했습니다. 지금 사회에 떠오르고 있는 문제인 인간의 성에 관한 이론, 즉 인간의 존엄성은 자신이 원하는 성을 선택하고 사는데 있다고 하는 이론 그리고 어린 아이부터 원하면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성 전환 수술, 대리모, 낙태, 안락사, 등에 관한 것에 대해서 교회는 인간의 존엄성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에 동참하는 것에 있으며, 특히 인간의 성은 하느님께서 주신 것이고 인간이 따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에 바꿀 수 없다고 분명하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어떤 매체는 이 선언문으로 교회가 사회에 전쟁을 선포했다고 말했습니다.
사회는 이렇게 진리를 선포하는 교회의 모습을 알지 못합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 추구하는 것과 너무나 다른 것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들은 반박할 수 있는 이론이 없기 때문에 편협하다, 과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소외 받는 이들을 무시한다 등등 온갖 공격으로 묻어 버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은 그러한 세상의 편에 서 있습니다. 그러한 교회 안에서 세례로 태어난 우리들, 위에서 그리고 영에서난 우리들도 그렇게 세상이 알아보지 못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언제나 세상과 타협하려는 유혹이 끊임없이 있습니다. 진리안에서 영에서 태어난 모습으로 살아간다면 분명하게 많은 미움과 박해를 받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때로는 적당히 하고 넘어가려고 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상이 자신들과 비슷하기 때문에 우리가 누군지 알아보는 순간 우리는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세례 성사의 은총이 지워지지는 않지만 하느님이 아닌 것으로 가리고 가려서 알아볼 수 없게 만든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진리를 선포한다면, 사도행전에서 모든 것을 내어 놓고 나누는 삶을 선택했던 초대 교회의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이들이 모여 들었듯이 하느님을 마음을 다해서 찾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을 보고 모든 이들을 위해 들어 올려 지신 하느님께 모여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약속대로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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