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재의 수요일이기 때문에 이제 강론이 끝난 후에 머리에 재를 얹는 예식을 합니다. 재를 얹으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이 생명은 영원하지 않다는 것과 먼지에서 왔으니 먼지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죽음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약속을 믿으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재의 수요일에 머리에 얹는 재는 그것을 얹은 사람이나 보는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의 희망을 상징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회에서는 누구나 이날 머리에 재를 얹고 있는 사람을 보면 카톨릭 신자라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 보다 먼저 저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떠오르게 할 수 있다면, 믿지 않는 이들의 마음이 움직이도록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물론 머리에 재를 얹고 다닌다고 해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먼저 그러한 희망을 가지고 매일 하느님을 선택을 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머리에 재를 얹고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위선자들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면 365일 머리에 재를 얹고 살아도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오늘 재를 얹고 하루를 보내다가 내일부터는 씻어서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이 오늘 하루 어떻게 단식하고 금육하며 뭔가 하는 것 같다가 아무런 변화가 없는 원래의 모습을 돌아간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의 수요일을 시작으로 사순 시기 동안 우리는 요엘 예언서의 말씀대로 회개하며 주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가던 길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며 과연 주님께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 아니면 세상에 보이기 위한 삶을 살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멈추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 어떻게 주님안에서 자신을 돌아볼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순 시기의 희생은 무엇보다도 가던 길을 멈출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이 큰 희생이든 작은 희생이든, 큰 사랑이든 작은 사랑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순 시기에 내가 하는 선택이 세상에서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리는 나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인가 입니다. 멈추지 않고 가던 길을 계속 가면서 회개하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요엘 예언서에서도 하느님께 돌아오라고 하면서 평소의 삶을 멈추야 한다는 맥락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위선자들과 같이 세상에 보이기 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자기 중심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가장 원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세상은 그러한 우리의 모습에 바로 반응하고 ‘좋아요’ 를 눌러주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곳에서 기도하거나, 단식하며 희생한다고 드러내 보이고, 베풀며 살아간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자선을 보이는 곳에서만 한다면, 당연히 세상은 그것을 보고 반응을 합니다. 대단하다, 저런 모습이 있는지 몰랐다 등등, 하면서 ‘좋아요’ 를 막 눌러 주지요. 하지만 하느님을 따르는 삶에서는 그러한 즉각적인 반응은 거의 없습니다. 알아주기를 원하는데 하느님께서 자신이 원하는 반응을 그때 그때 주시지 않으니 그것을 얻을 수 있는 것에 치우치려는 유혹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믿음이지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에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세상과 같이 우리가 하는 것에 반응을 한다면, 그래서 하느님을 따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머리에 얹는 재는 지금 당장 얻을 수 없는 영원한 삶을 향한 희망이며, 그것을 얻기 위해서 세상의 것에 죽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표징입니다. 그렇게 세상에서 자신의 바람을 향해 죽는 삶을 살아갈 때 우리의 삶이 영원한 삶을 향한 희망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고 매일 재를 머리에 얹고 사는 것이 보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을 위한 보임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것이 되는 것이며, 형제 자매들에게 내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을 보여 주는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지금 당장 하느님께서 우리가 선택하는 것에 반응하지 않으신다고 해도 회개하는 삶을 통해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할 때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분명하게 영원한 삶을 통해서 다 갚아 주실 것이라는 것을 믿으며 멈추고 주님을 바라 봅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