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사무엘기 상권에 나오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아마 긴 시간을 아들을 가지게 해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해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편의 다른 아내는 자녀들이 많이 낳았기 때문에 그 여자는 한나를 업신여기고 못살게 굴었지요. 그래서 서러움에 한나는 오늘 우리가 들은 대로 눈물을 흘리며 주님께 기도합니다. 아마 그런 날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 한나에게 자녀를 허락하시지 않은 것은 사무엘이라는 주님의 예언자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그래서 한나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하며 주님의 뜻과 그 때를 기다리시는 길 밖에는 없었던 것이지요. 사무엘이라는 이름이 “내가 주님께 청을 드려 얻었다.” 라고 하며 지어준 이름이라고 하는데, 한나가 그때 한번 청을 들여서 얻은 아들은 아닐 것입니다. 아마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계속해서 주님께 매달리고 청을 드렸었겠지요. 그만큼 간절했던 것입니다.
오늘 마르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이 당신을 알아보자 조용히 하고 나가라고 하시면서 그에게 말을 더 못하게 하십니다. 물론 예수님께서는 더러운 영이 알아보는 것을 이용해서 당신이 누구인지 사람들에 말씀하시며 사람들이 당신을 믿고 따르도록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큰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신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아직 당신을 드러낼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대사제 와 최고의회 앞에 잡혀 가셔서 대사제가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메시아인가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모세가 이름을 물었을 때 대답하신 그 이름으로 그렇다고 대답하십니다. 이제 당신이 누구인지 밝힐 때가 되었던 것이지요.
우리는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더욱 빠른 것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캐나다에서 살지만 여기 회사들과 사람들이 한국에서는 얼마 안 걸릴 공사를 몇 년씩 걸리며 공사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지지요. 그렇게 빠른 것을 우리는 신앙 생활에서도 하느님께 원합니다. 내가 하는 기도와 내가 드리는 청을 주님께서 내가 원하는 시간에 빨리 들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그리고 때로는 주님께서 그 청을 들어주시지 않고 한나가 겪은 것과 같이 기다리게 하면 인내하지 못하고 주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아니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하며 더 이상 기도하지 않는 것이지요.
인내는 우리가 신앙 생활 안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그분의 뜻을 찾고 그 분의 뜻대로 움직여야 하는 것인데 그 반대로 살아갈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당신께서 원하시는 때에 원하시는 방법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니다. 어떤 기도의 응답도 우리가 구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지, 구원에 상관없이 이 세상 것을 위해서 들어주시지 않습니다. 우리 구원에 해가 되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가 청한다고 해서 들어주시지 않는 것이지요.
기도의 응답은 주님께서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응답을 끌어 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내가 원했던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응답입니다. 한나가 아들을 가지게 된 것도 응답이고, 가지지 못했다고 해도 그것 또한 주님의 응답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기도를 듣고 계시고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결과에 매여 조급해 하지 말고 언제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당신이 정한 때에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리고, 어떠한 응답이든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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