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There should be no daylight between husband and wife.”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하나이기 때문에 그 사이에는 틈이 없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예수님께서 교회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고, 삶이 편하고, 모든 것을 가졌다고 해도 세상을 보면 틈이 많이 벌어져 있는 부부들을 보기 힘들지 않습니다. 여러분들 사이에도 그런 부부가 있다면 무엇이 그 틈이 생기게 하는지 성찰해서 주님과 함께 그 틈이 작아져 없어지도록 해야 합니다. 완전한 일치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는 오늘 에페소서 말씀에서 부부의 관계는 예수님과 교회의 관계를 말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십니다. 하느님과 교회, 즉 우리의 관계에는 daylight 이 보이면 안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우리의 삶을 돌아보면 아마 그러한 틈이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들은 그 틈이 작지만 어떤 이들은 너무나 넓어서 간신히 손가락 끝만으로 이어져 있는 모습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라도 관계가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놓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틈이 아주 넓다고 해도 언제든지 우리의 선택에 따라서 주님의 은총으로 다시 좁혀 질 수 있는 것이고 틈이 없도록 주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여호수아기에서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는 주님을 섬기는 것과 조상들이 섬기던 신을 섬기는 선택이 있다고 합니다. 약속된 땅에 들어온 이들은 그들의 조상이 하느님을 어떻게 대했는지, 얼마나 큰 틈이 그들과 하느님 사이에 있었는지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섬기겠다고 하지만 그들이 진정으로 하느님을 섬겼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다시 조상들과 같이 우상을 섬기는 모습으로 돌아간 것을 보면 오로지 하느님만 바라보고 섬긴 것이 아니지요. 주님과 일치하는 삶이 아니라 어느 정도 틈을 두고 있다가 더 벌어지는 것을 잡아주던 여호수아와 같은 사람이 없어지자 하느님과 멀어진 것입니다.
아마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을 돌보기를 멈추지 않으셨고, 계속해서 그들이 당신과 일치 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완전히 버리셨다면, 손가락 끝으로 라도 잡고 계시지 않았다면 아마 구세주를 보기도 전에 멸망해 버렸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그들을 놓지 않으셨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유배지에서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고, 하느님의 구원을 가져다 주시는 메시아에 대한 희망이 살아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은 당신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거북해 합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몸과 피를 내어 주시는 것은 그때까지 감히 생각 할 수도 없었던 하느님과의 일치를 말합니다. 정말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틈이 없도록 하는 일치로 가는 길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며 예수님을 떠나 갑니다. 그리고 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도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라고 물으시면서 선택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베드로는 이해 할 수 없는 말씀을 하시는 예수님이지만 그분께 생명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믿으며 가지 않겠다고, 예수님과 함께 하겠다고 대답하지요.
예수님을 떠나간 사람들과 같이 우리도 때로는 하느님과의 관계를 이해관계로 착각합니다. 내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이해가 되지 않으면 선택하지 않습니다. 성경 말씀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 그리스도인이지만, 이해 할 수 있는 세상의 것과 비교하며 세상과 다르게 살아가야 한다고 하는 주님의 가르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하며 세상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경우가 지금 수도 없이 많습니다.
우리는 이해가 아니라 믿음으로 주님과 일치해야 합니다. 우리가 받아 모시는 빵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라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그 믿음, 당신을 선택하는 믿음을 통해서 우리와 일치하시고 어떤 틈도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우리는 그 사이가 벌어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며 주님에게만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다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를 주님에게서 때어 내려는 악마의 공격은 집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방심하는 어떤 순간도 놓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꽉 닫혀 있는 어떤 문이나 뚜껑을 열어야 하는데 틈이 없으면 거의 불가능 합니다. 안 열리는 것을 열라고 하려면 그 사이에 무엇을 집어 넣어서 벌려야 하는데, 틈이 없으면 그것이 힘들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악마가 아무리 공격을 한다고 해도 나와 주님 사이에 틈이 없이 일치하면 악마는 그 사이를 벌려 놓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문이나 뚜껑에 틈이 있을 때는 힘들 수 있어도 도구를 써서 그 틈을 벌려 놓을 수 있고 결국에는 열 수 있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믿지 않거나 의심하며 틈이 벌어지게 되면 악마는 그 사이에 들어와 그 사이를 더 벌려 놓을 수 있습니다. 물론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하느님께서 붙들고 계시기 때문에 완전히 떨어져 나가지는 않고 그 사이는 다시 좁혀 질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느님을 다시 선택하며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죄와,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미워하거나 욕심으로 자신만을 위한 삶으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면 고해 성사와 성체 성사 그리고 성사를 통한 주님의 은총의 힘으로 이웃을 향한 겸손과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과 다시 일치하는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그러한 일치가 가능한지, 그 과정이 무엇인지 다 알지 못하고 이해하지 못해도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을 믿고, 내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따라서 살아간다면, 특별히 성체 성사는 우리가 주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길, 즉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에 큰 힘이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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