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중에는 귀가 좋지 않아서 잘 듣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만, 잘 들을 수 있으면서도 가족의 말이나 다른 사람이 하는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제대로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면서 건성으로 대충 들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부부들 사이에 어떤 때 보면 보통 아내가 남편이 귀가 어두워져서 못 듣는 것인지 아니면 못들은 척하는 건지 알수 없다고 불평을 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나이가 들어가면서 잘 안 들리는 것도 있겠지만 그럴수록 더 상대방에게 집중해야 들을 수 있는 것이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예레미야 예언서의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서 당신의 백성들이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듣지 않는다’ 라는 말씀을 여러 번 하십니다. 듣지 않기 때문에 목을 뻣뻣이 세우고 고약하게 굴며, 제멋대로 사악한 마음을 따라 고집스럽게 되었다고 하시지요. 그러한 이스라엘에 비해서 우리는 어떠한 가요? 하느님께 집중하며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요? 아마 듣지 않는다면, 귀 기울이지 않는다면 실천은 당연히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신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듣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몸을 돌려 그분께만 집중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사람들의 삶을 보면 세상일에 만 집중하며 하느님의 말씀은 대충 흘려 듣습니다. 미사를 나오고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몸을 돌려 하느님께 집중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른 것에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러면서 듣고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가서는 하느님의 뜻을 알 수 없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다, 하면서 세상을 닮은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한 변명을 합니다. 듣고 있는 것 같았지만 사실 듣지 않은 것이지요.
하느님께 귀 기울이며 우리의 몸을 돌려 하느님께 집중하는 삶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방해가 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마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하느님이 없는 것과 같이 자신만을 위해서만 살아가려는 세상에서 하느님의 말씀은 듣기 싫은 사람의 말처럼 들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 백성으로 살아가시기를 원하시고, 생명을 얻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기쁨과 평화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그리고 그 기쁨과 평화가 영원히 이어지기 위해서는 하느님 외에 다른 누구에게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귀 기울이며 말씀을 듣는 것은 기도할 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 생활 안에서 무엇을 하든, 직장에서 일을 할 때도, 아이들을 돌볼 때도, 운동을 할 때도 항상 우리의 몸과 마음은 하느님을 향하고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미리 예약을 하시고 말씀을 하러 오시지 않습니다. 언제나 함께 하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귀 기울이고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사순 시기를 지내며 지금 자신이 주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듣고 있는지 성찰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만일 그렇지 않다면 몸과 마음을 다시 주님께 돌리고, 내 앞에서 말하는 가장 가까운 친구에게 집중하듯이 주님께 집중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들을 때 우리는 주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것이고 주님편에 서서 주님과 함께 모아들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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