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마 정말 부자들 말고는 다 이래저래 빛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집도 빛을 내서 사고, 차도 빛으로 사고, 생활비가 모자라서 엄청난 이자를 내며 크레딧 카드에 빚지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들도 지금 빚이 있든 아니면 예전에 빚이 있었든, 어떻게 해서 다 갚았고 있는 것도 아마 시간이 걸리더라도 언젠가는 갚을 수 있을 정도일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첫번째 종은 만 탈렌트를 빚졌다고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종이 뭐 한다고 만 탙렌트씩이나 빚을 졌는지 모르지만 지금 돈으로 계산하면 약 38억 불이라고 하지요. 국가와 국가 사이나 큰 회사에서는 볼 수 있는 숫자이지만 개인이 그런 돈을 빚졌다는 것은 아마 절망적인 상황일 것입니다. 이자를 감당하기도 힘들겠지요. 이 종이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려 달라고 부탁을 했을까요? 기다려 달라고 하지만 아마 그런 말을 하는 자신도 분명히 갚지 못할 것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탁을 하면서도 주인이 그 엄청난 빚을 탕감해 주리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 다니엘 예언서의 말씀을 보면 아자르야는 불 한가운데 우뚝 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은 이스라엘의 값을 수 없는 죄에 대해서 말하며 하느님께 자비를 간청합니다. 자신과 형제들을 불타는 가마 속에서, 원수의 손에서 지켜 주시듯이 이스라엘을 지켜 달라고 청하는 것이지요. 우리는 모두 그렇게 이스라엘과 같이 갚을 수 없는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많은 이들은 자신들에게 그렇게 엄청난 빚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작은 죄 하나도 우리는 절대 갚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사라지도록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하느님께 가서 빌기는 못할 망정 아무런 문제가 없는 듯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인 것이지요. 이 세상과 우리는 우리의 죄가 얼마나 엄청 난 것인지 모릅니다. 안다면 모두가 하느님께 달려갈 것입니다.
복음에 종은 빚 때문에 주인 앞으로 끌려 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가 스스로 찾아오기를 기다리십니다. 언제나 우리의 빚을 탕감해 주시기 위해서 우리가 당신께 오기를 기다리시지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용서만 청하면 그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해 주십니다. 당신의 아드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그 값을 치렀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가야 합니다. 나중에 더 이상 용서를 청할 수도 없을 때 끌려가서 재판을 받기 전에 지금 주님께 가서 기도와 회개와 고해성사, 그리고 성체 성사를 통해서 주님께 용서를 청해야 합니다.
말씀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이미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도 없습니다. 오직 한가지 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 가서 매달리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러한 우리를 보고 주님께서는 분명히, 한치의 의심도 없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도 가서 이웃을 용서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을 우리가 진정으로 안다면 주님을 통해서 그 사랑으로 우리도 가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이웃의 잘못을 용서할 수 없는 것은 없습니다. 단지 우리가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고, 그럴 때 하느님의 위대하신 사랑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그 안에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께 가서 청하는 용서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에 나왔다고 해도, 진정으로 그 용서를 체험했다면 하느님의 모습으로 가서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면 완전하지 못한 우리의 뉘위침도 주님의 은총으로 큰 회심을 우리의 삶과 이웃의 삶에 가져 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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