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살고 있는 캐나다는 복지가 잘되어 있다고 하지만 그만큼 많은 세금을 내야 합니다. 월급에서 몇 십 퍼센트씩 세금을 내고, 물건을 살 때 마다 세금을 내고, 차가 있거나 집이 있으면 그에 대한 세금을 내고 정말 세금의 종류도 다양하고 많이 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거철이 되면 가장 중요한 이슈 하나는 언제나 세금인 것이지요.
그렇게 많이 내지만, 그래도 다 내지는 않습니다. 먹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버는 것에 따라서 다르지만 일부분 만을 냅니다. 그리고 기부를 많이 하면 세금의 일부를 돌려받기도 하지요.
오늘 복음에서 세금에 대해서 질문하며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는 수석 사제 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그리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 삶의 몇 퍼센트를 하느님께 돌려 드려야 할까요? 아마 모두 답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일부가 아니라 전체, 모든 것이죠.
사회에서는 물론 일부만 세금으로 내지만, 그 일부에서도 일부를 안 내거나 숨기면 문제가 됩니다. 하느님과의 관계에서도 우리의 모든 것을 드리려고 하지 않고 일부만 드리려고 한다면 우리 신앙생활에 문제, 하느님과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지요. 사회에서 같이 벌이 있는 것보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과 온전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베드로 2서의 말씀대로 하느님의 날이 오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세상의 삶에 희망을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무법자들의 오류에 쉽게 휩쓸릴 수 있는 것이지요.
세금도 한편으로 보면 빼앗기는 것이 아니라 다른 복지로 돌아오듯이 하느님께서 우리의 모든 것을 원하시는 것도 빼앗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이세상에서 살아가면 주님의 은총으로 주님을 조금씩 더 알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길은 주님의 이끄심을 따라 가는 길이고 나의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는 길입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러 온 이들은 백성들을 하느님께 이끄는 역할에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자신들 조차도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결국에 십자가에 못박아 버린 것이지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린다는 것은 두려울 수 있습니다. 내가 컨트롤하는 삶에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내 삶을 컨트롤 하게 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원하시는 분은 우리와 같은 다른 사람이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잘 아시는 분이며, 지금 우리의 모든 것을 주신 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분을 믿고 드린다면 우리가 알지 못하지만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영원한 삶으로 나아가는 길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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