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에서 하느님께서는 생명이 없는 뼈에 살갗을 씌우시고 살이 오르게 하신 다음 영을 넣어 주어서 생명을 주십니다. 에제키엘과 이스라엘에게는 희망이 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께 등을 돌리며 죽음을 선택했고 유배지에서 희망이 없는 삶, 생명이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생명을 주시고 그들에게 약속된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겠다는 약속을 하시는 것이지요. 그리고 당신의 말씀은 이루어진다는 것을 확실하게 하십니다.
지금 세상을 보면 사람들은 모든 것이 풍성하고 생명이 넘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마른 뼈 밖에 없는 죽어 있는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습니다. 숨쉬고 있다고 해서 우리가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원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해서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에 오셔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하지만 죽음이 당신을 잡아두지 못한 것은 그분께 생명이 있기 때문이고, 그 생명은 곧 사랑인 것입니다. 사랑만이 생명을 나눌 수 있는 것이고, 사랑만이 죽음의 힘을 이겨 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말라 비틀어진 뼈가 아니라 주님께서 주시는 생명으로 가득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이 말라 비틀어진 뼈로 가득한 것은 단순히 나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형제 자매들에게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사랑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잘 알 고 있듯이 모든 것을 내어 놓는 사랑입니다.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에 율법 교사의 질문에 단순히 지켜야 하는 어떤 규칙이 아니라 생명의 길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과연 살아 있는 사람인지 성찰해야 합니다. 신앙 생활도 자신만을 위한 생활이 될 수 있고, 오직 하느님과 나, 그리고 내가 하느님께 받을 수 있는 은총에만 관심이 있는 잘못된 신앙 생활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한 신앙 생활을 한다면 어떻게 나를 내어 놓고, 희생하며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내가 다치고 손해를 보고 상처받고 아프더라도 어떻게 이웃을 사랑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이미 말라가는 뼈밖에 남지 않은, 생명이 없는 그리스도인 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도 없지요.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사람인데, 생명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을까요?
우리가 그런 삶을 살고 있다면 죽은 이를 살리시는 주님께 돌아서야 합니다. 그것은 자신을 향하는 삶에서 이웃을 향해 삶을 돌리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통해서 아무리 생명이 없어 보이는 마른 뼈와 같다고 해도 주님께서는 살을 씌워 주시고 당신의 생명을 불어 넣어 살려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당신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