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회에서나 교회안에서나 많은 경우 무엇이 옳은 일이고 그렇지 않은 일인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또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안다고 해서 그것을 항상 실천하지 않습니다. 교통 신호 위반이나 과속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사람은 많습니다. 음주나 대마초와 같은 마약이나 강한 진통제 등을 사용한 후에 운전하면 안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운전을 하다가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목숨까지 빼앗아간 사람들도 있습니다. 학생들도 숙제를 해야 하고 공부를 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늦게까지 게임을 한다고 하지 않거나, 요새는 막판에 AI 등을 이용해서 쉽게 해결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밖에도 우리는 해야 하는 것은 하지 않고,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할 때가 많이 있을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사도 바오로도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내가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나는 내가 바라는 것을 하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싫어하는 것을 합니다… 선을 바라면서도 하지 못하고, 악을 바라지 않으면서도 그것을 하고 맙니다.” 악이 항상 옆에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율법 학자가 예수님께 첫째가는 계명에 대해서 물을 때, 예수님께서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그리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아마 너무나도 많이 들어서 성당에 잘 나오지 않는 신자들도 이 계명에 대해서 잘 알 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 학자와 같이 예수님의 말씀이 맞다고 하는 사람이 많겠지요. 하지만 그렇게 알고 있는 것과 살아가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린 것과 같이, 그리고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시는 것과 같이 안다고 해서 사랑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율법 학자에게 그가 하늘 나라에서 멀지 않다고 하시는 것은 아마 그 사람은 어느정도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노력이 먼저 하느님을 향해야 하는 것인데 과연 그러고 있는지 성찰해야 합니다. 물론 인간이기 때문에, 나약함 때문에 자신을 먼저 앞세우고 감정을 앞세웁니다. 사랑은 감정으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감정을 앞세워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그랬다가 조금이라도 그 감정이 상하면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금방 미움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도 바오로가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려는 의지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데 충실했고 고난을 견디어 냈듯이, 의지를 가지고 사랑하려는 노력이 필요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랑은 많은 반대와 유혹에 부딪히겠지만 그럴 때 마다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미사를 통해서 우리 마음의 눈을 주님께 돌리는 노력을 계속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견디어 내면, 견디어 내서 사랑한다면 분명히 그분과 함께 다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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