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데리고 온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의 두 귀에 손 가락을 넣으시고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렇게 하지 않으셨어도 “열려라” 하고 말씀만 하셨어도 그 사람을 낫게 하실 수 있었겠지만,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 가셔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요새는 개인 영역이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나 그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누군가에게 다가가는 것은 허락이 있지 않으면, 그 정도로 가까운 사람이 아니면 안 되는 세상입니다. 더군다나 낯선 사람이 개인 영역을 침범할 뿐 아니라 갑자기 예수님과 같은 행동을 한다면 아마 상당히 세게 거부반응이 일어날 것입니다. 정신 나간 사람이 아니고 서는 낯선 사람이 자기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발라서 혀에 손을 대는데 가만 있지 않겠지요. 아마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은 그 시대의 기준에도 예상외의 행동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우리 모두는 죄로 인한 상처,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처,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부딪히는 많은 일에서 받는 상처들로 온전한 사람이 없습니다. 복음에서 듣지 못하고 말 더듬는 이의 모습은 우리들을 포함한 많은 이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우리의 상처를 치유해주시기 위해서 가까이 다가오시려고 합니다. 가서 당신 사랑을 전하도록 당신 사랑으로 낫게 해 주시려고 하는데 많은 이들은 그렇게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오시는 주님을 가만히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는 것은 아마 두렵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예상하는 대로 우리가 원하는 대로 당신의 일을 하시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모습으로 다가오시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을 하십니다. 복음에서 치유를 받은 사람과 같이 그렇게 사람이 보기에 이상한 행동을 하셔도 가만 있었듯이 우리도 믿고 그러한 예수님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세상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아주 멀어지기는 싫지만 예수님의 손이 닿는 것은 원하지 않는 아주 애매한 모습으로 거리를 두는 것이지요.
우리가 예수님과 거리를 두지 않고 손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오시게 한다면 아마 우리의 삶의 모습은 많이 다르지 않을까요? 우리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든, 당신의 침을 우리 혀에 바르시든 모든 것을 주님을 믿고 맡겼다면 우리가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것이 열리고 치유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주님과 가까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솔로몬은 처음에는 닿을 정도로 하느님과 가까이 있었지만 나중에 하느님을 멀리해서 그가 죽은 후 오늘 1독서에 나오는 예로보암에게 열 지파가 넘어갑니다. 분열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우리의 마음이 닿아 있지 않으면 그 마음에서도 분열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예로보암이 온갖 우상을 섬겼던 것과 같이 세상의 우상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위에 예수님과 멀리 떨어져 있는 형제 자매들을 예수님의 손이 닿을 수 있도록 데리고 가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항상 주님의 손이 닿을 수 있는 곳에 머물고, 그 손이 어떠한 모습으로 라도 우리의 마음에 닿아 있을 수 있도록 두려워하지 말고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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