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는 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또한 언제나 기쁘고 즐거운 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고통스럽고 슬프고 세상이 다 무너지는 것과 같은 일도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미리 알 수 있다면 준비라도 하고 있을 텐데 언제 어떤 일이 우리에게 생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더 아픔이 클 것입니다.
요셉이 어떻게 마리아가 임신 중이라는 것을 알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습니다. 파혼을 하려고 생각한 것을 보면 마리아에게 직접 들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직접 들었다면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마리아가 요셉에게 말하지 않았을까요? 변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에 요셉이 함께 하기를 원하셨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요셉이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큰 충격이고 아픔이었을까요? 하지만 그가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것과 마리아를 사랑했다는 것을 세상에 마리아의 일을 드러내려고 하지 않은 그의 모습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 마음에 상처가 깊게 남지만, 성 요셉은 사랑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더라도 그것이 상처로 이어지지 않은 것이지요. 그래서 그 아픔과 상처 때문에 모든 것을 뒤엎어 버리고 복수하고 싶어 하는 이 세상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며 사랑할 수 있다는 것과, 꿈에 나타난 천사의 말을 믿고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을 보면 하느님과 함께 머무른 사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의 배우자로 그리고 예수님의 지상 아버지로 요셉은 정말 합당한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먼저 마리아와 요셉과 함께 머무르셨고 그들은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겸손과 순종으로 하느님안에 머물며 사랑으로 응답했습니다.
그러한 요셉이 있었기 때문에 마리아는 두렵지 않았을 것이고 큰 위안을 얻었을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먼저 두려울 것이 없었지만 지상에서 하느님의 뜻에 함께하는 동반자가 있어서 더욱 기쁘지 않았을까요? 방이 없어서 마구간에서 아이를 낳았을 때나, 이집트로 피신하거나, 예수님을 잃어버렸을 때 등,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가 없었다면 더 힘들고 어려운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어머니와 같이 우리도 하느님의 뜻에 함께하며 같은 길을 걷는 동반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어머니와 많은 성인들이 계시지만 바로 우리 주위에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동반자라고 생각하기에 어려울 정도로 관계가 힘들 때도 있지만 그들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동반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먼저 자신을 이해해 달라고 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고 용서하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함께 가는 길에서는 내가 먼저가 되지 않고 언제나 형제 자매가 먼저가 되어야 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이 먼저가 되려고 했기 때문에 함께하신 하느님과 멀어지며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요셉 성인과 마리아에게는 하느님의 뜻이 먼저였고, 요셉 성인이 자신이 겪는 아픔보다 마리아의 안위를 걱정했듯이 서로가 먼저였기 때문에 자신을 위한 삶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하는 삶을 살았고 어려움이 있을 때도 서로와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는 아드님의 십자가 길에서도 하느님의 구원 사업에 동반자로서 끝까지 함께 하셨고, 성령이 내리실 때 사도들과 함께 하시며 성령의 힘으로 태어난 교회의 동반자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의 어머니로서 어머니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십니다. 그러한 어머니의 사랑과 우리를 보살 피시는 아버지의 사랑을 형제 자매들과 나누며 함께 구원의 길의 동반자로서 희생과 나눔과 사랑으로 하나가 될 수 있도록, 그 관계 안에서 때로 자신이 받은 상처나 자기 중심적인 것에 매이기 보다 먼저 사랑할 수 있도록 해야겠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명히 아담과 하와가 선택한 길과는 다른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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