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사람이면서 하느님으로 자처하고 있다고 하며 죽이려고 합니다. 사실 사람이 신이 된다는 것은 무슨 환타지 소설이 아니면 상상하기 힘들 뿐 아니라 불가능하다고 생각 되는 일입니다. 유다인들이 그 말을 듣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리는 아니지요. 아마 지금 여러분들도 내가 신이 되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보통 죄 안 짓고 열심히 살아서 하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목표인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듯이, 우리가 신이 된다는 것도 지금 상상할 수 없고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지만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카톨릭 교회 교리서 460항에서 성 아타나시우스의 말씀을 인용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은 당신 신성에 우리를 참여시키려고 우리의 인성을 취하셨으며, 인간을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다.”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함으로써 인간이 신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는 말이지 우리가 또 하나의 다른 신이 되어서 세상을 만들고 악인을 벌하고 그런다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하느님과 같은 힘을 가진 신이라고 한다면 지금 우리가 섬기는 하느님을 포함한 신은 수도 없이 많겠지요. 그래서 이세상 삶에서나 영원한 생명을 누릴 때나 언제나 우리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부터 일치를 이루고 하느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신과 일치하는 것을 얼마나 주님께서 원하시는 지는,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사람이 되신 것 만이 아니라 죽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진정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래서 그 사랑안에 머무르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박해와 고통과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길입니다. 예레미야서의 말씀에서와 같이 주님께서 힘센 용사처럼 우리 곁에서 지켜 주시는 것이지요. 우리는 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하도록 초대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어떤 세상의 모습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제 부활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남은 사순 시기와 성주간이 진정으로 은총의 시기 될 수 있도록 우리를 신으로 만들기 위하여 인간이 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께 감사드리며 매일의 작은 일들, 기도하는 시간, 이웃이나 가족들과 대화하는 시간 등 모든 일 안에서 주님과 일치하는 길을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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