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최대 비극이었던 625 전쟁의 시작도 벌써 74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휴전 상태로 있으면서 가끔 통일의 희망도 보이긴 했지만 요새는 점점 더 관계가 안 좋아지는 모습입니다. 누구 누구를 탓하고 손가락질 하기 너무나 쉽지만 우리가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하며 미사를 드리는데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과연 그 기도가 진실된 기도일까요?
지금 세상은 여러 곳에서 전쟁이 터진 곳도 있지만 불씨가 서서히 살아나고 있는 곳도 있습니다. 세계 정세가 많이 불안한 상태이지요. 물론 이런 상황이 되기 까지 많은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큰 이유는 이기주의에서 시작된 서로를 향한 미움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문제가 생기면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지 못하고 비난하고 다투는 것이 먼저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계가 지금 그러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은 국가 간의 문제 만이 아니라 사회안에 사람들의 관계가 그러한 모습이기 때문이겠지요.
서로 맞서고 있는 이들이 화해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서로를 용서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도 하느님께 맞섰습니다. 그래서 죄를 짓고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고,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도 끊임없이 하느님께 맞섰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사회는 하느님께 맞서고 있는 사회인 것이고 우리의 삶도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인간을 보고 하느님께서 하신 일은 멸망과 파괴가 아니라 화해의 손길을 내미시는 것입니다. 오늘 신명기의 말씀대로 인간이 마음속으로 뉘우치고 하느님께 돌아오기를 기다리시는 화해의 손길을 내밀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한 화해를 위해서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는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놓으셨습니다. 우리가 그 사실을 받아들인 다면 우리도 희생을 통해서 화해의 손길을 서로에게 내밀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과 같이 우리도 서로를 사랑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잘 알고 있고, 사랑해야 한다고 얘기하면서도 때로는 희생과 십자가는 빼 놓으려고 합니다.
가장 필요한 것을 빼 놓으면 결국에 사랑한다는 것은 내가 편할 때, 자신에게 득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입니다. 서로 이용만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화해하고 용서하는 삶이 될 수 있을까요? 국가가 서로 이용만 하려고 하고, 힘있는 이들은 힘없는 이들을 이용만 하려고 한다면 어떻게 진실된 평화가 가능할까요?
우리 민족이 서로 화해하고, 모든 이가 바라는 평화로운 통일을 위해서 먼저 사람들의 삶이 변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서로를 너그럽고 자비롭게 대해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 말하듯이 먼저 용서해야 합니다. 용서는 무조건 베푸는 것이지 어떤 조건에 따라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 않고 무엇을 얻어 내기 위해서, 어떤 원하는 말을 듣기 위해서 등, 무엇인가를 조건으로 건다면 그것은 용서가 아닌 것이지요. 그러한 것은 믿지 않는 이들도 충분히 하고도 남는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아간다면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어떻게 진실된 기도를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대로 일흔 일곱번까지 라도 용서해야 합니다. 조건 없는 베푸는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그러한 삶을 살아가며 진정한 화해와 일치의 공동체를 이룰 때 가서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민족의 일치를 위해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그러한 면에서 많이 부족하지만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여 주님의 말씀에 귀 기울인다면 우리를 끝없이 용서하시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당신의 은총으로 도와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