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데믹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이 집에서 일하는 것을 선호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무슨 이유에서 든지 회사들은 사람 찾기가 어려워져서 사람을 고용할 때 그 사람이 원하는 기준에 맞춰 주는 경우가 생기기도 했습니다. 보통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고용하는 사람의 조건에 맞춰야 하는데, 그 반대가 되어 버린 경우인 것이지요. 그래서 예전에도 그랬겠지만, 어떻게 보면 지금은 더 회사들이 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조건을 내 세울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고용하는 회사에게만 이롭게 된다면 문제가 되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포도밭 주인과 일꾼들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일꾼들은 하는 일 없이 장터에 앉아 있었고, 주인은 그들을 고용해서 포도밭 일을 하게 합니다. 일꾼들의 처지를 보면 그들이 포도밭 주인에게 흥정을 하거나 조건을 내세울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을 것이고, 주인은 정당한 품삯을 약속했기 때문에 아무런 불만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온 사람에게도, 한 시간만 일한 사람들에게도 똑 같은 대우를 하는 주인을 보고 인간적으로 당연히 불만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인이 말하듯이 그는 자신의 것을 가지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에게 약속한 정당한 품삯을 주는 것이지요.
우리 모두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포도밭으로 초대한 일꾼들 입니다. 우리가 희망이 없이 장터에서 서성거리고 있을 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정당한 보수를 약속하셨고 그 초대에 응답했습니다. 그런데 때로는 우리는 자신에게 어떤 능력이 있는 것과 같이 주님과 흥정을 하려고 합니다. 흥정을 하려면 상대방이 없고 나에게만 있는 무엇인가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자신에게 있는 무엇이 하느님께 없는 흥정할 만한 토큰이 될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는데, 많은 이들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거나 만족하지 못하고 더 받아야 하는 권리가 있는 것과 같이 주님께 말합니다. 또한 이웃이 나보다 더 가지거나 무엇이 잘되면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질투하고 시기하며 하느님께서 자신을 차별대우 하시는 것 과 같이 불만으로 가득하기도 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더운 햇빛 아래서 하루 종일 일을 했다고 해도 하느님께서 이미 약속하신 것 이상의 무엇을 바랄 수 있는 능력이나 권리는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초대 하지 않으셨다면 아무런 쓸모 없이 장터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자신의 뜻을 내세우며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흥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주님의 뜻대로 주님의 포도밭에서 일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것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만을 바라본다면 아무리 늦게 주님의 포도밭으로 들어온 형제 자매라고 해도 함께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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