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떤 밭에서 우연히 숨겨져 있는 보물을 발견했고 그것을 가지려고 했다면 그것만 가지고 갈 것입니다. 다시 숨기고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밭을 사고 하는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자신이 찾아낸 보물이 자신의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한다면 한편으로 보면 정직하지 못한 것이지요. 먼저 그 보물이 밭 주인의 것이 아니라고 해도 결국에 자신의 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늘 나라 라는 보물도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아무런 값도 치르지 않고 그냥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값을 치러야 하고, 그 값은 자신이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신앙 생활도 자신의 기준으로 적당히 알아서 하려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하느님께서 정하신 값을 치르지 않으면 가질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오른 쪽에 못박혀 있던 강도가 그날로 하늘 나라를 들어간 것을 가지고 하늘 나라를 훔쳤다고 하지만, 사실 생각해보면 그는 예수님과 함께 달린 십자가 위에서 자신의 죄를 뉘우쳤고, 물론 우리가 지금 보기에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주님께 드렸습니다. 분명하게 값을 치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하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밭이나 진주의 값을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가격을 부르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가격은 정당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당신의 목숨으로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값어치 있는 것인지 알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너무 비싸다고 하면서 포기합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살 만큼 귀한 것을 찾기 힘들고, 될 수 있으면 자신에게 유리한 가격으로 사려고 흥정하고 값을 깎고 하듯이 하느님과도 자신이 원하는 가격을 가지고 흥정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늘 나라도 포기해 버리는 것입니다. 그 만큼 하느님이 삶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기억하는 성 이냐시오는 하느님의 나라가 아니라 세상의 다른 꿈을 가지고 살아갔었지만 하느님을 만났을 때 그는 무엇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지 알았고, 그것을 보여주신 하느님을선택했습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값, 세상을 버리고 하느님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는 값을 치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안에서 은총의 삶을 살아 갈 수 있었던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를 살 수 있도록 그 값이 정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도록 도울 수 있는 길을 찾았던 것이지요.
하느님 나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보물이며, 더 귀한 것이 없는 보물입니다. 그러한 보물을 우리는 적당한 값을 치르고 살 수 없습니다. 자신의 삶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나 기분이나 희생하고 싶은 한도에 따라서 적당히 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그 보물이 뭍 혀 있는 땅을 절대 사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보물은 절대 우리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냐시오 성인과 같이 무엇이 가장 중요하고 값 진 것인지 잘 성찰하고 판단해야 하고, 하늘 나라라는 보물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내어 놓고 그 보물이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다시한번 말씀드리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낼 수 없는 가격을 부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내어 놓으려는 값을 아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원하시는 값을 낼 수 있는 은총을 주시는 분입니다. 그 값진 보물이, 귀한 진주가 우리의 것이 될지는 우리가 선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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