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코린토 1서에서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 라고 사도 바오로는 말씀하십니다.
물론 우리는 그 말을 들으면 당연하다고 생각 할 수 있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이 그랬던 것과 같이 우리도 그런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잡혀 죽으시고 부활하시기 전까지 그리스도라고 그들이 고백한 예수님을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새 왕국을 건설할 세상의 삶을 위한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그와 같이 우리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기도나 공동체안에서 삶이 현세의 삶을 위한 것인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갑자기 큰 고통이 다가오거나 삶이 힘들어 지면 하느님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나 하느님은 없다고 생각하면서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혹시 떠나지 않는다고 해도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을 도운 많은 여자들에 대해서 말하면서,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신의 것을 내어 놓으면서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일이 무엇인지, 어떻게 되는 것인지 몰라도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를 믿은 것입니다. 부활이나 영원한 삶에 대한 것을 알고 있지 않았다고 해도, 세상의 것에 의지하지 않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서 내어 놓은 것은 이미 그들의 마음에 현세의 삶 이상의 것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내가 현세의 삶만 잘 살아서 운이 좋으면 가는 곳이 아닙니다. 운이나 어떤 확률에 의지하기에는 절대 놓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세의 삶을 풍요로움이나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믿고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영원한 생명을 향한 희망 보다 이 삶의 것을 향한 희망이 더 크다면 찬스에 맡기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웃에게 베푸는 것, 형제 자매들을 용서하고 화목하며 평화를 이루는 삶은 오직 하느님을 향한 희망에서 흘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 그 희망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현세의 삶은 영원한 삶을 향한 희망으로 우리의 마음이 가득할 때 하느님의 뜻대로 제 자리를 찾아 가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뒤죽박죽이 되어 무엇을 향한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오로가 말씀하시는 가장 불쌍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셨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희생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따라가는 것이 헛되지 않도록 당신께서 먼저 그 길을 가시며 보여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주님께 감사드리며 헛된 희망의 삶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을 향한 희망으로 매 순간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은총 구하며 미사를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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