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 군중들은 표징을 요구합니다.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를 떠올리며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보여 달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내가 생명의 빵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따로 표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당신이 그들이 보고 믿어야 하는 표징이라는 것이지요.
물론 우리가 알아듣기에는 이해가 가지만 예수님께 질문을 한 군중들이 알아듣기에는 무리가 있던 것은 사실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생명을 주는 빵을 항상 먹고 싶은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바로 그 빵이라고 하시니, 이해할 수가 없는 대답인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은 분명히 이해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믿음은 언제나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오늘 사도행전에서 나오는 스테파노의 순교도 그렇습니다. 그의 말이나 행동은 백성의 원로들과 지도자들이 당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그들이 성령이 충만한 스테파노가 하늘이 열려 있고 사람의 아들이 하느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인다고 하자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며 그에게 달려드는 모습을 상상해 보면 그들의 모습은 예수님을 만난 악마의 반응과 같습니다. 그리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스테파노를 돌로 쳐 죽였지만 그 상황에서도 스테파노는 그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을 합니다. 바로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용서하는 것이지요.
좋은 사람이기 때문에, 착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목숨을 내어 놓으시고, 십자가 위에서도 당신을 못박은 이들을 용서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믿기 때문에 세상과 다르게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은 바로 그 믿음의 열매인 것이지요. 세상이 이해해 주기를 바라거나 좋아해 주기를 바란다면 그것은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진정한 믿음은 그리스도만을 바라보며 다른 이들의 모습에 좌우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삶 안에서, 특히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있을 때 주님을 바라보며 표징을 보여 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함께 하시고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표징을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미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몸을 내어 주시는 성체를 통해 당신이 그 표징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하십니다. 그러한 예수님을 알아 볼 수 있도록 우리도 스테파노와 같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청해야 하겠습니다. 물론 세례와 견진으로 이미 성령께서 우리안에 머무르시지만, 믿지 않고 세상에 치우치는 모습 때문에 성령의 힘이 드러나지 않을 때가 많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시며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으로 굳건해 질 수 있도록, 그래서 형제 자매들을 위해서 목숨까지도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랑의 성사가 될 수 있도록 주님의 은총을 매일 청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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