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여행을 가거나 어디로 먼 길을 떠나게 되면 준비가 필요합니다. 아무리 간단하게 가는 까미노와 같은 길도 그날 짐을 싸서 그냥 가면 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또 성지순례를 가다 보면 필요 이상으로 준비를 해서 많은 짐을 가지고 오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이유는 마음이 편하기 위해서입니다. 필요한 것을 다 챙기고, 목적지나 그곳까지 가는 과정이 확실 하고 다 준비되어 있을 때 마음이 편해지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오늘 창세기의 말씀에서 아브라함에게 길을 떠나라고 하시고 복음에서도 요셉에게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길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두 경우에 다 보통 길을 떠나는 사람이 알아야 하는 것을 아무것도 알려 주지 않으십니다. 정확한 목적지가 어디인지, 가서 어디에 머물러야 하는지, 언제까지 있어야 하는지, 등등 아무것도 정확한 것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아무것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아무도 모르는 어딘가로 가야 했던 것이지요.
우리에게 지금 그렇게 길을 떠나라고 하면 당장 그 말씀대로 떠날 수 있을까요? 집과, 재산과, 사람들과 관계와 모든 것을 아무런 정리도 하지 않고 그냥 떠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모습은 그 만큼 우리의 삶이 세상의 많은 것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하는데,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기 보다 다른 것에 더 의지하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아브라함과 성가정이 하느님의 말씀대로 그렇게 길을 떠 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들은 모든 것을 하느님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의 것들은 중요하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돌보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확실한 목적지도 없이 모든 것을 뒤로 하고 길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이지요.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가 될 것이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인 마리아와, 성령으로 아기를 가진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돌보라는 하느님의 뜻을 그대로 받아들인 요셉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그렇게 이집트라는 곳으로 길을 떠날 수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 아니지요. 언제나 그렇게 주님의 뜻에 열려 있던 분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뜻하지 않은 길을 가도록 하실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죄로 인해 멀어져가는 우리의 길을 바꾸기 위해서, 이웃을 더 사랑하고 나누기 위해서, 세상의 고통안에서 좌절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기 위해서 지금 우리에게 편한 길, 스스로 준비가 잘 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길을 버리고 믿음만 가지고 당신이 보여주시는 길을 가라고 하십니다.
세상에서 그 목적지가 확실하지 않다고 해도, 편하지 않다고 해도 그렇게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길을 용기를 가지고 갈 수 있는 믿음을 청하며 우리의 모범이신 어머니와 성요셉에게 전구를 청하며 이 미사를 봉헌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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