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사람들은 위험한 곳이 있으면 피하지 그곳으로 계속 가거나 일부러 들어가지 않습니다. 어떤 곳에 여행을 가게 되면, 특히 모르는 도시에 갈 때 저는 그 도시에 어느 지역이 위험한 곳인지 미리 알아봅니다. 요새는 그런 것을 알기가 어렵지 않지요. 그리고 나서 될 수 있으면 그 지역으로는 가려고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가는 길에 함정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 길을 멈추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오늘 1 독서의 예레미야나 복음의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른 이들이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주님의 말씀을 전하고, 복음을 선포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하게 하느님, 아버지께서 버리지 않으신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뜻을 알고 실행하려는 확고한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만일 그 길이 두렵고 아버지의 뜻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면 아마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어려웠을 것입니다.
여러분이나 저나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선택했을 때 과연 무엇을 바라보며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무엇인가 좋은 일만 있고, 행복하고 아픔이 없는 삶을 위해서 이 길을 선택했을 까요? 삶에 문제가 있고 고통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위로를 받고, 평화로운 삶이 가능 할 거 같아서 이 길을 선택했을까요? 이 길이 죽으러 가는 길인지 알았다면 과연 선택 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좋은 자리를 요구하는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마시려는 잔을 그들이 마실 수 있는가 물어보십니다. 그들이 그럴 수 있다고 하자 그들이 당신의 잔을 마실 것이라고 하시지요. 우리는 과연 예수님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물론 제자들은 그 잔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세상에서 죽는 길이고 십자가의 길입니다. 섬기는 사람이 되는 것은 자신이 죽지 않고 서는 불가능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목숨을 바치지 않고 서는 형제 자매들을 위한 삶, 그들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은 분명하게 예수님을 죽인 것과 같이 우리가 가는 길에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을 피하는 길은 세상이 원하는 잔을 마시는 길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마심으로서 세상에서 잠시 살 수 있을지 몰라도 영원한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들은 잘 알지 못했지만 예수님을 선택했고 그 잔을 마시며 주님께 영광을 드렸습니다. 우리도 사순 시기를 보내며 과연 우리가 그 잔을 마실 것인지 다시 새롭게 선택해야 하겠습니다. 제자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한 것과 같이 삶의 매일의 삶안에서 예례미야 예언자와 예수님과 같이 아버지의 뜻과 그 사랑에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우리도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다고 대답하며 실제로 그 길을 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두려워 보이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해도 세상에서 죽음의 선택은 분명히 부활의 영광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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