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는 모습은 생각해보면 다가오는 사람을 반기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른 것을 하고 있다가 반가운 사람이 갑자기 찾아오면 하던 것을 계속하며 그냥 상관하지 않는 모습으로 맞이하지 않습니다. 일어나서 그 사람을 바라보며 반가워하는 것이지요. 심지어 강아지들 조차도 반가운 사람이 오면 자기 자리에 가만 있지 않고 와서 앞발을 들고 달려 들며 반갑게 맞이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우리에게 얼마나 반가운 분일까요? 우리는 매일의 삶을 살아가면서 과연 예수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지금 악을 행하며 형제 자매들을 미워하고, 세상의 것에 마음을 주고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이 절대 반갑지 않을 것입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는 것이 아니라 공포에 휩싸여 쥐구멍이라도 찾아 들어가려고 하겠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솔직하게 각자 자신에게 물어봐야 합니다. 지금 주님께서 오신다면, 지금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일들이 눈 앞에서 일어난다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본다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주님을 맞이 할까요? 그 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기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준비하라고 우리에게 계속해서 상기시켜 주시는 이유는 그 누구도 멸망하지 않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그분께서 나에게 주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사람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리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부활의 영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악을 행한 이들은 예수님도 어떻게 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이지요.
우리 모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입니다.’ 천사의 말 대로 우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바빌론이 상징하는 악이 무너질 때 함께 무너지지 않기 위해서 어둠을 멀리하며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고 언제나 주님의 빛이 비추는 곳에 머물러야 합니다. 어둠 속에 있을 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밝은 빛은 두려움이겠지만, 이미 주님의 빛 안에 머무르는 이들에게 주님의 영광의 빛은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주님을 바라 보며 반갑게 맞이 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