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자주 하는 주님의 기도를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십니다. 아버지를 찬미하고 일용할 양식과 용서를 청하며 유혹에서 지켜 주시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청합니다.
유혹에서 지켜 주시고 악에서 구해달라고 청하는 것은 일용할 양식이 언제나 필요하듯이 끊임없는 악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이기 때문에 우리를 지켜 줄 수 있는 주님의 은총이 언제나 필요한 것입니다. 물론 용서도 마찬가지인 것이지요. 한 번만 용서받고 그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언제나 용서를 받아야 할 것이 있는 죄인이기 때문에 주님의 용서는 언제나 우리 삶에서 필요한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에서 청하는 것들은 말만 하고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양식을 주신다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아무 노력도 없이 가만 있으면 광야의 이스라엘이 받은 것과 같이 만나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주신 능력, 탤런트를 주님의 뜻대로 잘 사용해서 자신 만이 아니라 이웃에게 베풀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요.
유혹과 악에 관한 것도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유혹에서 지켜 달라고 하면서 삶을 바꾸지 않고, 유혹이 있는 곳을 피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무조건 우리가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알코올 중독이면서 집에 보이는 곳에 술을 쌓아두고 이제부터 마시지 않겠다고 한다면 절대 그 유혹에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술을 끊겠다면 그 술병들을 다 없애고, 술에 유혹이 있을 수 있는 자리는 피하고 하면서 그 유혹의 원인을 없애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적어도 시작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의 죄, 우리가 행하는 악행도 그러한 유혹이 거듭되는 삶의 모습을 근본적을 바꾸지 못한다면 아무리 하느님께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해달라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악에서 구해달라고 해도 자신이 그 안에서 나올 생각을 하지 않으면 빠져나올 수 없는 것입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웃을 용서해야 한다고 하시는 것도,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근본적인 것이 변하지 않으면 절대 용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없고, 하느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을 생각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웃을 용서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장애물이자 이웃을 용서하는데 제일 넘기 힘든 장애물은 자신입니다. 상대방이 아무리 극악 무도한 사람이라고 해도, 어떤 사람이 아무리 큰 피해를 나에게 입혔다고 해도, 자신이 당한 것이 아무리 억울하고 분하다고 해도 그러한 것이 용서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것은 자신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변하지 않으면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노력없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없습니다. 당신이 몇 번이라도 더 십자가에 다시 못박히신다고 해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고 하면 생명을 주실 수 없습니다. 당신의 능력이 부족해서 가 아니라,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주님의 사랑에 잘 응답하고 있는지 성찰해 봐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응답은 주님과 함께 우리의 삶의 모습을 변화 하려는 노력이고, 우리의 노력은 언제나 부족하지만 그 부족한 것은 주님께서 채워 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서 이 세상에서 부르실 때 까지 멈추지 않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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