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열왕기 하권에 나오는 치드키야도 역시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지른 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왕으로 세운 바빌론 왕에게 반역을 하며 멸망을 자초했던 것이지요. 그가 무엇을 믿고 반역을 했는지 한편으로 보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신이 하느님께 충실해서 다윗과 같이 하느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약속을 하신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이고 그 또한 다른 악한 왕들과 같이 온 백성과 함께 벌을 받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이 일로 인해서 유다의 완전한 멸망을 가져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 대로 70년의 유배 시간을 바빌론에서 보내고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크게 잘못했다면 사람은 원한을 품게 되고 거의 그 관계는 끝이 난 것으로 봐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벌 하신다고 해도 그렇게 끝까지 원한을 품고 용서하지 않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아니면 어떤 다른 고통으로 인해서 아무리 희망이 없어 보이는 모습이라도 하느님의 사랑을 믿는다면 언제나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예언자들은 그렇게 이스라엘이 유배를 갔어도 이스라엘의 복원, 하느님과의 관계의 복원의 희망을 말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한 희망을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절망의 삶을 살고 있던 나병환자를 치유하시며 보여주십니다. 우리도 때로는 정말로 힘든 일들을 겪을 때가 있지만 예수님 시대에 나병환자 들이 겪었던 육체적 만이 아니라 정신 적인 고통은 엄청 났을 것입니다. 그러한 고통으로 인해 그들은 희망이 없었지만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예수님에게서 희망을 보고 가서 치유를 청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라는 것을 알아봤기 때문에 치유에 확신이 있었던 것이지요.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희망이 없어 보이는 곳에도 당신의 희망의 빛을 비추어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악하고 믿음이 없다고 해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빛을 보여 주시는 분입니다. 십자가의 죽음 마저도 마다하지 않으시는 사랑이시기 때문에 아무리 악해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으신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 삶에서 당연히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향한 희망을 봐야 하는 것이고, 그 희망이 우리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나병환자도 미리 착한 삶을 살아야 하는 조건이나 다른 어떠한 준비 과정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믿음으로 청한 것 밖에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에 모든 희망을 건다면 그렇게 우리에게도 필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물론 나병환자의 치유와 같이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사라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고통안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님만을 바라본다면 우리의 영혼은 주님안에서 안식처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영원한 평화와 사랑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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