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2일

보통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응원을 하면 한쪽을 응원하지 양쪽 다 이기라고 응원하지 않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해외 여행을 다녀오면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데, 격리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하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운전을 하다가 빨간 불에 설 수도 있고 안 설 수도 있지만 둘 다를 한 번에 선택할 수는 없지요. 길을 가다가 돈을 달라고 하는 가난한 이를 도울 수도 있고 돕지 않을 수도 있지만 둘 다를 다 선택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의 삶에는 아무리 욕심을 부려도 한꺼번에 다 할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을 해야 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도 코린토 1서 말씀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선택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나누면서 주님의 삶에 동참할 수 있지만, 우상에게 바친 희생 제물을 먹는 다면 마귀를 선택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잔도 마시고, 마귀들의 잔도 마실 수 없으며,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고 마귀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도 없다고 합니다.  사도 바오로는 어떠한 삶을 살 것인지 분명하게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것이며 양다리를 걸칠 수 없다고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양다리를 걸치려고 합니까?  세상에서는 세상의 모습으로 살고, 주일에는 성당에 와서 신앙인의 모습을 보이려고 합니다.  주님의 식탁에서 먹고 마신 것을 세상에 가서 나눠야 하는데,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를 입었다면 어디에서나 입어야 하는데 이것 저것 갈아 입기를 반복하면서 마음이 나눠져 있기 때문에 일상 생활에서 만나는 형제 자매들 사이에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을 수가 없는 것이지요.

우리는 좋은 나무도 될 수 있고, 나쁜 나무도 될 수 없습니다.  그 두가지 모습을 가지고 있는 나무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 까요?  그와 같이 우리는 주님을 선택한 좋은 나무이든지, 아니면 마귀를 선택한 나쁜 나무입니다.  그것을 알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그 열매를 보면 알 수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그 열매는 내 삶의 모든 곳에서 맺는 열매를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는 얼마든지 그럴 듯해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과일들도 겉은 멀쩡해도 안은 썩었을 수가 있듯이, 나쁜 나무에서 맺는 열매는 그럴 듯해 보여도 안은 썩어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은총안에 있지 않으면 건강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집도 그렇습니다.  반석위에 기초를 두고 지은 집이나, 맨땅에 지은 집이나, 보기에는 얼마든지 좋아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폭풍우가 몰아치고 홍수가 나 강물이 들이닥치면 그리스도의 은총안에 단단한 기초가 놓여 있는 집은 전혀 흔들리지도 않지만, 기초가 없는 집, 마귀의 거짓위에 세워진 집은 그대로 쓰러지고 마는 것이지요.  집을 짓는데 단단한 기초를 세우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러한 집을 짓는 것은 주님의 은총안에서 나의 희생과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은 기초가 없이, 대충 지어 올리려고 하는 것이지요.  예수님을 마음으로 따르며 그 분위에 자신들의 삶을 지어야 하는데 그냥 대충 사는 것보다 힘들고 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루카 복음 11 장에서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편에 설 것인지 분명하게 선택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내 모든 것을 다한 선택이지 일 부분의 삶만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지요.  주님께 모든 것을 걸지 않는 것은 주님편에 서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선과 악이 전쟁 중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 싸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서서 싸울 것인지 분명히 선택해야 합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우리가 뭔 데, 스스로는 아무런 힘도 없는 인간들이 하느님편도 아니고 마귀 편도 아닌 자리에 설 수 있을 까요?  우리가 하느님과 마귀 사이에서 평화 협정이라도 체결할 수 있도록 중재하려고 하나요?  이미 악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의해서 무너 졌습니다.  지금은 최후의 발악인 것이지요.  다시 한번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당신 편이 아니면 반대하는 자, 마귀의 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무너진 쪽에 서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 쪽에 줄을 서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많습니다.

우리도 그러한 어리석은 선택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성찰해 봐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열매를 보고 알 수 있다고 하셨 듯이, 지금 나는 내 삶 안에서 어떠한 열매를 맺고 있을 까요?  내 느낌에 좋고, 나에게 달다고 해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는 아닙니다.  세상에서는 오히려 그 반대 일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단 것이 아니라 희생이 따르더라도 하느님과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삶이, 지금은 쓰다고 해도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