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5일 – 제 14주일

철부지는 철없는 어린아이를 가리키거나 철없어 보이는 어리석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어른이 어른답지 못한 어린 아이와 같은 행동을 할 때 그 사람을 보며 철부지 같이 행동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지혜롭고 슬기로운 것과 철부지와 같은 삶 중에 선택하라고 한다면 아마 거의 모든 이들이 세상에서 지혜롭고 슬기로운 것을 선택할 것입니다.  누구도 어리석어 보이지 않고 철부지 같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남 보다 낫기 위해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한 세상의 지혜는 하느님의 선물이고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슬기로움과 지혜가 나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철없이 행동한다면 이 세상이 어떠한 모습일 까요?  아마 엉망이 될 것입니다.  오늘 로마서의 말씀에서도 사도 바오로는 육에 따라 살면 죽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 말씀 또한 우리의 육신이, 세상의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지요.  세상은 하느님께서 창조 하신 것인데 어떻게 나쁘다고 할 수 있을 까요?  어디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세상을 즐기지 말고 세상의 것은 다 버려라’ 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느님께서 우리를 가지고 장난하시는 것도 아니고, 필요도 없는 것들 나쁜 것들을 주시고 다시 다 버리라고 하실 리가 없지요.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기 좋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단지 보기에 아름답기 때문이기 보다 당신의 사랑이, 당신의 모습이 창조된 세상의 모습에 담겨 져 있기 때문이지요.  세상에 육적인 것, 물질적인 것들은 모두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데 없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가 말하는 육적인 것은 아담과 하와가 보여준 것과 같이 하느님이 아닌 것에 끌려 다니며 하느님의 은총안에서 살려고 하지 않는 우리의 모습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안에는 언제나 그러한 두가지의 모습이 존재합니다.  한편으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 귀 기울이며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려는 모습과, 악마의 유혹 대로 하느님을 잊거나 방해꾼으로 생각하며 내 뜻대로 내 기쁨과 즐거움만을 찾는 모습이 있습니다.  누구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리게 하는지는 우리의 삶의 모습과 선택에 있는 것이지요.

사도 바오로는 우리는 육에 빚을 진 사람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누군가에게 빚을 지게 되면 우리는 그 빚에 매여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몇 십년이 걸려서 몰게지를 다 갚거나, 한동안 갚지 못했던 신용카드 빚을 다 갚게 되면 사람들은 억매여 있던 것이 풀리는 것과 같은 자유를 만끽합니다.  그렇게 우리도 억매여 살지 않으면 하느님 안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는데, 세상에 빚을 진 것과 같이 온갖 유혹을 놓지 못하고 하느님 보다 세상을 선택하면서, 세상의 목소리에 더 귀 기울이면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지혜롭고 슬기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절대 누구에게나, 또는 어떤 물질적인 것에 억매인 삶을 선택하지 않을 것입니다.  선택할 수 있다면 언제나 자유로운 삶을 선택하겠지요.  1독서인 즈카르야 예언서의 말씀에서 겸손한 임금은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거나 사슬로 매어 버리는 것이 아니라 겸손으로 사람을 억압하는 모든 것을 없애시고 평화를 선포하시는 분, 진정한 자유를 선포하시는 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렇게 인간을 힘으로 누르지 않으시고 모두를 위해서 아드님이 우리와 같은 사람이 되고 처참한 십자가를 통한 죽음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의 사랑으로 사랑의 응답을 얻기 위해서 였고 그래서 우리가 당신의 사랑 안에서 자유롭기를 원하신 것이지요.

우리가 하느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랑의 응답은 우리에게 주시는 멍에를 매고 주님과 함께 가는 것입니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육적인 삶의 반대인 생명으로 이어지는 은총 안에서의 삶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대로 모든 것을 하셨듯이 우리가 아버지의 뜻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닮아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께 모든 것을 의지하는 철부지와 같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말은 예수님께서 철이 없었단 말이 아니라, 어느 한가지도 스스로 하지 않으시고 어린 아이가 모든 것을 부모에게 의지하는 것과 같이 아버지를 통해서, 아버지께 의지하며 하셨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것에 의지하는 지혜로움과 슬기로움은 하느님 앞에서도 자신에게 의지하며 하느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보고 받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계산을 합니다.  무엇이 자신에게 더 좋은 것인지 머리를 쓰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슬기로움은 복잡하고 유혹이 많은 세상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구분해서 알아듣고 당신을 선택하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자신을 위한 것으로, 내가 메고 싶은 멍에를 스스로 선택하는 교만함으로 변한 것입니다.  하지만 스스로 선택한 멍에는 결국에는 우리의 발걸음을 더디게 하고 죽음으로 가는 길만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해서 성령안에서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필요할 때만 들여다보는 나의 삶의 한 부분이 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그리스도께 닿아 있도록 우리가 그리스도안에 완전히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한 형제 자매들 과도 함께 한 멍에를 같이 메고 가는 것이지요.  혼자 매는 것과, 예수님 그리고 형제 자매들과 함께 매고 가는 멍에 중에 과연 어떤 것이 더 가벼울 까요?  당연히 함께 매고 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세상에 의지하는 지혜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안다고 해도 행동으로, 삶으로 옮기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 대로 성령께 의지하며 성령의 힘으로 자신만을 믿는 몸의 행실을 죽이고, 온전히 그리스도께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느님 앞에서 철부지가 되는 것이고 살아가면 겪는 어떠한 상황 앞에서도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안에서 안식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