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 제 16주일

농작물을 거둬 들이거나 꽃밭을 만들기 위해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에 하나는 인내심입니다.  아무리 좋은 씨를 뿌리고 물을 잘 주고, 거름을 충분히 준다고 해도 하루 아침에 나무가 되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그 누구도 씨가 다음날 자라서 열매를 맺지 않았다고 다 갈아 엎어 버리고 다시 시작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뿌린 씨에 대한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지속 적인 관심과 노력 그리고 기다리는 인내 심이 필요한 것이지요.

하지만 이 세상에서 기다리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많은 것이 빠르게 내가 원하는 시간에 이루어 지기를 바랍니다.  이웃이나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인내하기는 쉽지 않고 오히려 잘못하면 쉽게 지적하고 화를 내며 관계를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사는데 필요한 것만이 아니라 지금은 죽음도 기다리지 못합니다.  고통 때문에 죽음을 하느님의 뜻대로 기다리기 보다는 될 수 있으면 원하는 때 끝내기 위해서 안락사 같은 것을 선택할 수 있게 했습니다.  씨가 심어져 하루아침에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는 것이 황당한 것이라고 생각 하면서도 많은 이들은 자신들의 일이나, 특히 사람과의 관계에서 인내하며 기다리지 못하고 싹도 트지 않았다고 불평 불만을 늘어 놓는 것이지요.

우리가 그러한 반면 하느님께서는 한없이 기다리시며 인내하십니다.  오늘 복음의 말씀이 그러한 하느님의 사랑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이지요.  밭에 좋은 씨를 뿌리셨다는 말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모두 사랑으로 창조 하셨다는 말입니다.  아무리 세상에서 극악 무도한 악을 저지른 사람도 하느님께서 생명을 주셨을 때는 당신 사랑안에 살도록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절대 나쁜 씨를, 나쁜 인간을 만드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창세기에서 아담과 하와가 원수인 뱀의 꼬임에 넘어가 죄를 저질렀 듯이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보다 원수에게 귀를 기울이며 원수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는 가라지가 되어 버린 것이지요.

우리는 보통 그런 잡초를 화단이나 밭에서 보면 당장 뽑아 버립니다.  복음에서 종들도 주인에게 그렇게 할까요 하고 물어봅니다.  하지만 주인은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고 추수할 때 따로 거두어 들이겠다고 말합니다.  사실 그 시대에 원수들이 실제로 그런 일을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을 그들을 농사를 짓는 차원에서 잘 알아들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가라지는 보통 뿌리가 밀과 얽혀 자라기 때문에 잘못 뽑으려고 하다 가는 밀까지 뽑아 버릴 수 있는 것이었지요.  물론 예수님께서는 농사 차원에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비유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인내심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만일 하느님께서 악인들이 생기는 족족 처 내셨다면 아마 세상에 인구는 얼마 없을 것입니다.  하늘 나라도 아마 썰렁 하겠지요.

그랬다면 아마 사도 바오로는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다가 하느님의 손에 이미 없어졌을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하는 동시에 밭에서 뽑혀 나갔겠지요.  성 아구스티노 같은 성인도 그렇고 아마 많은 성인들도 악인이었을 때 하느님께서 뽑아 버리셨기 때문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을 보는 의인들이라고 해도 어떻게 그러한 하느님을 사랑하며 계명을 지킬 수 있을 까요?  어쩔 수 없이 두려움에 쌓여 시키는 대로 하는 기계와 같이 되어 버리거나 악인들과 함께 뽑혀 나갔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많은 성인들의 삶을 보면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악행을 보시고 포기하지 않고 기다리셨기 때문에 뉘우칠 수 있었고, 회심하여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위대한 성인들이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드러내신 아버지께서는 악인과 의인이 같이 살아가도록, 그래서 악인이 당신께 돌아설 수 있도록 은총을 주시며 기다리 십니다.  인내하시는 것이지요.

오늘 지혜서의 말씀에서도 하느님께서는 인내하시며 기다리시는 분이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너그럽게 심판하시고 관대하게 통솔하시며… 지은 죄에 대하여 회개할 기회를 주신다는 희망을 당신의 자녀들에게 안겨주셨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그런 기회는 언제나 있습니다.  죽음의 마지막 순간에도 하느님께서는 악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십니다.  모두가 당신이 좋은 씨를 뿌리신 것이기 때문에 당신의 곳간 안으로 거둬 드리기를 원하시지 따로 불구덩이에 던져 지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나 자신 만이 아니라, 내 주변에 하느님을 등진 이들을 보며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판단하고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함께 인내하고 기다리며 그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사랑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하느님께서 인내하시고 기다리신다는 것은 죄로부터 돌아서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가 성덕을 쌓아 당신을 닮아 가는 과정도 그런 것입니다.  씨앗이 하루 아침에 나무가 되어 열매를 맺지 않는 것과 같이 하느님께서는 하루 아침에 우리가 성인이 되기를 바라시며 사랑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씨앗이 자라는데 과정이 있고 시간이 필요하듯이 우리가 성인 되는 것도 과정이 있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두 손 놓고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라 정성을 들여 씨앗을 싹 트게 하고 가꾸는 농부와 같이 당신의 사랑과 은총으로 우리를 돌보시고 가꾸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신앙 생활은 하느님만 인내하시고 기다리시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웃과 평화를 이루며 살아가는데, 그리고 하느님을 따르는 데는 인내와 기다림은 필수입니다.  그렇지 못하는 것을 성격 탓을 할 수도 있고 내 잘 못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잘못이라고 손가락질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인내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 일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인내하시는 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와 같이 내가 이웃과의 관계에서 인내하고 기다리려고 한다면 그들을 위한 것이 라야 하는데, 보통 우리는 내가 먼저이고 내 중심이며 나를 위한 것이 먼저입니다.  그래서 더 인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당신을 내어 놓은 신 것과 같이 내가 희생하며 나를 내어 놓지 않으면 인내하지 못합니다.  특히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스케쥴 대로, 우리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으시기 때문에 기다릴 줄 모르면 하느님을 원망하게 되고 나를 사랑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지요.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열매를 우리 안에서 맺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시간에 우리의 시간을 맞춰야 합니다.  애가 서 3장 24-25 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을 바라는 이에게, 당신을 찾는 영혼에게 주님은 좋으신 분. 주님의 구원을 잠자코 기다림이 좋다네.’  내 시간에 따라 바쁘게 움직이며 기다리지 못하는 영혼은 그것이 세상에서 좋은 것 같아도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바라고 기다리는 영혼은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주님의 은총안에서 평화를 누릴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다림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돌보시듯이 우리도 이웃을 돌보고 복음을 전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씨앗은 싹을 트고 자라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세상에서 맺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