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 제 15주일

밭에 씨를 뿌리는 사람을 상상해 보면, 밭을 갈고 거름을 뿌리고 준비를 다 한 다음에 준비된 밭에다 씨를 뿌립니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씨앗 하나라도 밭이 아닌 곳에 떨어지지 않도록 될 수 있으면 조심해서 잘 뿌리겠지요.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씨 뿌리는 사람은 보통 씨 뿌리는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방식으로 씨를 뿌립니다.  아무데나 막 뿌리는 것이지요.  길에도 뿌리고, 돌밭에도 뿌리고, 가시덤불에도 뿌리고, 좋은 땅에도 뿌립니다.  밭에 뿌리다가 실수로 다른데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그렇게 뿌리고 다니는 모습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과 같이 당신의 말씀을 들을 사람을 미리 정해서 따로 불러 놓고 그들에게만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누구나 만났고, 어떠한 사람에게나 하늘 나라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믿든지 말든지, 율법학자 이든지 죄를 지은 죄인이나 병자 이든지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모든 곳에 막 뿌리면서 다니신 것이지요.  그 이유는 분명히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무리 나쁘거나 아니면 좋더라도 미리 판단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구에게 서나 생명의 길을 갈 수 있는 희망을 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에서의 마지막 순간에도 교회는 병자 성사와 성체 성사를 통해서 평생 죄를 짓고 하느님을 무시했던 사람에게도 하느님의 말씀의 씨, 은총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이라도 당신의 말씀을 듣고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좋은 땅이 될 수 있는 희망이 있기 때문이지요.

거칠고 메마른 땅, 돌밭과 가시덤불이 엉켜 있는 땅이 좋은 땅이 되는 것은 물론 쉽지 않습니다.  예전에 사람들이 캐나다에 자리를 잡고 살아가려고 할 때 아마 씨가 뿌려서 곡식이 자랄 정도로 좋은 땅이 이미 준비되어서 기다리고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나무를 베어내고 뿌리를 뽑고 돌을 치우는 등 많은 노력을 한 후 에야 사람들은 씨를 뿌리고 농작물을 얻을 수 있었겠지요. 사람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땅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아무런 희망이 없었다면 그러한 노력을 하지 않았겠지요.  그 땅이 당장은 아무리 쓸모 없어 보여도 열심히 개간을 하고 나면 좋은 땅이 될 것이고 풍성한 농작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것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눈 앞의 어려움에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사람의 마음이 아무런 쓸모 없는 땅과 같다고 하여도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에게서 희망을 보십니다.  문제는 그 사람이 같은 희망을 보고 있는 가 하는 것이지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생명에 모든 것을 맞춰서 이 세상에서 은총을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희망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오늘 로마서 말씀에서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견주면,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겪는 고난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오로가 겪은 어려움과 고통을 보면 그러한 희망이 없이는 견디지 못하고 포기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믿었고,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 있던 것이지요.

망원경의 초점을 멀리 있는 것에 맞추어 놓으면 멀리 있는 것은 잘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것을 보려고 할 때 흐릿해 보이고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반대로 가까운데 초점을 맞춰 놓으면 멀리 있는 것이 흐릿해 보이지요.

그렇다면 나의 삶의 망원경은 어디에 초점이 맞춰져 있을 까요?  세상의 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면 초점은 자신들 앞에 있는 것에만, 가까운 것에만 맞춰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을 보지 못하고, 하느님께서 하신 영원한 생명에 대한 약속에 관심을 가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눈 앞에 일어나는 일에 삶이 좌우되는 것이지요.  하느님을 따르는 길은 곧은 길인데 그것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하며 쉬운 길 만을 찾는 것이지요.  그러한 사람들의 마음은 절대 좋은 땅이 될 수 없으며 하느님의 말씀의 씨앗, 은총의 씨앗이 자라나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께서는 계속해서 씨앗을 뿌리시지만 새들에게 먹히거나, 해가 솟아오르자 타버리거나 가시덤불에 숨이 막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믿음의 씨가 자라는 것을 방해하는 길, 돌밭, 가시덤불은 내가 선택하는 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머무르는 것은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희망을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망원경이 근 거리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지요.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희망이 내 희망이 라면 그것을 위해서 어렵고 힘들더라도 길을 부수고, 돌을 걷어내고 가시덤불을 뽑아 내는 노력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그것이 좋은 것인 줄 알고 거기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그런 땅을 개간해서 좋은 밭으로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그러한 마음이 좋은 땅이 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길이 좋아 보여서 부수기가 아깝기도 할 것이고,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돌덩이는 너무나 커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가시덤불을 뽑아내려고 하면 찔리고 긁히는 등 고통이 따르겠지요.  그래서 더 우리는 그것들이 좋다고 정당화시키며 하느님 보시기에 좋은 땅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에게 언제나 좋은 소식은 하느님께서는 말씀의 씨앗을, 은총의 씨앗을 어떤 사람들은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고, 씨앗이 자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아시면서도 아무데나 막 뿌리시면서 다니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망원경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하는 영원한 나라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지요.  만일 하느님께서 우리와 같이 앞에 있는 것, 당장 우리가 짓는 죄만 바라 보신 다면 아무대나 씨를 뿌리지 않고 좋은 곳만 찾아 뿌리시겠지요.  우리의 초점이 하느님과 함께 맞춰져 있다면 망원경과는 달리 가까이 있는 것은 더 잘 보이게 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그것이 창조물의 본 모습인 것입니다.  지난 번에도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은 나쁜 것이 없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이 나와 하느님의 관계를 방해하는 것은 내가 창조물을 하느님의 뜻대로 보이 않고 내 뜻대로, 내가 보고 싶은 데로 보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씨가 자랄 수 없는 길과, 돌밭, 그리고 가시덤불이 좋은 땅이 되는 길은 무엇보다도 내 희망의 초점을 다시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희망을 새롭게 하고 삶을 변화하는 것도 중요 합니다.  아무리 씨가 뿌려져도 자랄 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픔이 있더라도, 고통이 따르더라도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 삶이 변해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 희망을 가지고 이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절대 편한 삶이 아닙니다.  지금 편한 삶을 원한다면 주님께 희망을 두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인간으로서 우리가 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항상 긴장감이 있습니다.  Tension 이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세상 쪽으로 그리고 다른 때는 하느님 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지요.  그러한 세상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희망은 그리스도인에게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희망은 우리가 살기 위해서 숨쉬어야 하는 공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공기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죽음만이 있듯이, 하느님을 향한 희망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고 세상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내 마음을 좋은 땅으로 만들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말씀과 은총의 씨앗이 때와 장소가 없이 언제나 어디에나 뿌려지듯이 희망의 공기 또한 언제든지 들여 마실 수 있습니다.  다른 데로 찾으러 가지 않아도 됩니다.  다가오는 한주도 우리 안에 뿌려진 말씀의 씨앗이 건강하게 자라 날 수 있도록 매번 숨을 쉴 때 마다 하느님을 향한 희망을 숨쉬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