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3일

우리가 어느 목적지에 가려고 하면 보통 내가 있는 곳에서 거기까지 가는 길은 하나만 있지 않습니다.  여러 갈래의 길이 있지요.  그래서 요즘은 어디를 가려고 할 때 보통 구글 지도 같은 것을 이응 하면 쉽고 제일 빠른 길로 잘 찾아 갈 수 있습니다.  사고나 다른 이유로 차들이 막혀 있는 곳을 피하게 해주고, 가장 가기 쉬운 길로 찾아서 안내를 하지요.  모든 것에서 편하고 쉬운 길을 찾으려는 세상에서 운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편하고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한 예 이지만 세상이 흘러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려움을 가능한한 피하고, 고통이 있는 길, 특히 내 삶으로 값을 치러야 하는 길은 돌아서 가려는 것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나에게 좋은 것, 내 느낌에 좋고 내가 원하는 것, 항상 내가 중심이 되어서 나를 기준으로 나에게 맞는 길을 찾으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은 고통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피하기 위해서, 자신을 위해서 때로는 이웃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는 오늘 복음에서 멸망으로 가는 문은 넓고 길도 널찍하여 그리로 들어가는 자들이 많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이 흘러가는 대로 자신을 위한 길을 가는 사람들은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기 때문에 안전하게 보이고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 문으로 보이는 것이지요.  다들 그렇게 살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살아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어 보일 까요?  편하고 쉬운 길이 있는데, 왜 사서 고생을 하는가 하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대로 내가 살자고 내 중심으로 나에게 편하고 좋은 것 만을 찾는 길은 결국에는 멸망의 길입니다.  가는 길은 좋아 보이나 그 길이 끝나는 곳은 생명이 없는 곳인 것이지요.

그 반면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하는 이들, 정말 비좁은 길을 가려는 이들은 주님께 의지하며 자신을 이웃에게 내어 놓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길이지요.  사람들이 많이 가지 않기 때문에 외로워 보이는 길인 것이고, 더 가지고 편해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내어주고 고통이 오더라도 주님안에서 인내하며 견디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히즈키야 왕은 바로 그런 좁은 길을 선택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시리아 임금이 예루살렘을 둘러 싸고 협박을 하는 편지를 보내자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아시리아 제국에 맞선 다른 나라들은 자신들이 가진 힘이나, 이집트와 같은 대국의 힘을 빌려서 살아 남으려고 했지만 다 무너졌습니다.  북 이스라엘 왕국도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주님을 찾지도 않으며 사람의 힘에 의지하다가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서 무너졌습니다.  물론 히즈키야 왕도 그렇게 다른 나라들에게 구원을 요청하고 힘을 빌려서 살아 남으려고 할 수도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도 그렇게 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는 다른 이들이 하지 않은 선택을 합니다.  하느님께 의지하는 것이지요.  그의 기도는 그가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하느님께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그는 주님을 믿는 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남기 위해서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 때문에 하느님을 찾은 것이지요.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다윗과의 약속을 기억하시며 예루살렘을 지켜 주십니다.

그렇게 지금 이세상에서도 하느님께 의지 하는 삶은 그다지 대중적인 삶이 아닙니다.  세상의 넓은 길과 문을 선택하면서 좁을 길과 문을 동시에 선택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고, 예수님의 말씀과 같이 넓고 편해 보이는 길을 선택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충실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사람의 힘이 아니라 주님의 힘에 의지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능과 죄를 향한 끌림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쉬운 길, 십자가가 없는 길을 선택하라고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를 내어 놓으며 주님을 선택할 때, 이 세상에서 좁은 길과 문을 선택 할 때 주님께서는 직접 아시리아 군대를 치시며 예루살렘을 보호 하신 것과 같이, 우리를 위해서 악을 치시며 영원한 삶을 향하는 길에서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좁은 길, 주님을 선택할 수 있는 은총을 구하며 이 미사를 봉헌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