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해와 비가 무슨 연관이 있을 까요?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비가 오면 해가 안보이고, 해가 보이면 보통 비가 오지 않지요.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중요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이세상에 생명이 있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지요.  둘 중에 하나만 없어도 얼마 가지 않아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는 생명이 없는 세상으로 변할 것입니다.  그렇게 중요한 것을 하느님께서는 선인에게나 악인에게나 똑 같이 내려 주신 다는 말씀은 아버지께서는 모두에게 생명길을 똑같이 열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악인을 보면 손가락질하고 화내고 욕하고 하며 그들을 깎아 내리며 우리와의 관계를 닫아 버리려고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똑같이 모두를 향해 열려 있고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비는 끝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은 내가 어떤 일을 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자비에 달려 있는 것이고, 아버지께서는 죄인들에게 그 자비를 아낌없이 베푸십니다.  그들이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생명에 꼭 필요한 것을 주시는 것이지요.  오늘 1독서에서도 아합 왕은 큰 잘못을 저질렀지만 그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친다는 뜻에서 자루옷을 걸치고 단식에 들어가서 자신을 낮추자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내리시려고 했던 재앙을 그에게는 내리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겸손을 보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것이지요.   그렇게 하느님께서는 어떠한 악인도 사랑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느님과 같이 모두를 똑같이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누가 나에게 아합 왕과 같이 잘못을 한다면 많은 이들에게 용서와 자비는 물 건너 간 것이지요.  그래서 사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라기보다 당신께서는 우리를 통해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생명으로 이끄시려고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는 자비가 내 것인 것 마냥 조건을 달아서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되고, 하면서 내가 자비를 베풀고 거두는 것을 결정하는 사람이 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자비를 가장 확실하게 얻을 수 있는 길은 겸손입니다. 아합 왕이 겸손으로 하느님의 벌을 피해 갔듯이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겸손에 약하십니다.  벌을 주시려고 하다 가도 거두시고, 용서하시는 것이지요.  그런데 내가 겸손하지 않으면 내가 하느님의 자비를 얻을 수 없는 것만이 아니라 내 이웃이 하느님의 자비를 알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황무지나 사막에 아무리 비가 오고 해가 내려 쬔다고 해도 생명으로 가득한 숲이 되지 않는 것과 같이 겸손하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황무지나 사막이 되어 가기 때문에 아무리 하느님의 햇살과 비를 맞아도 변화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전에 EDGE Camp, 초등학교 6,7,8 학년 캠프를 여러 성당들과 함께 진행했을 때 프로그램 중에는 항상 캠프 봉사자들이 아이들에게 자신들이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한 것을 나누는 때가 있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고해성사를 보기 위해 준비하려고 할 때 그랬습니다.  봉사자들에게 자신의 부족함을 몇 백명이나 되는 아이들 앞에서 드러낸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들의 겸손 된 나눔은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자비하신 하느님을 드러내는 것이었고, 아이들의 마음이 주님의 자비를 향해 열릴 수 있도록 도운 것입니다.

그렇게 각자가 겸손하게 주님의 자비를 전하는 길이 될 때, 주님의 자비는 이 세상에 끝없이 퍼져 나갈 수 있지만, 내가 겸손하지 않으면 우리 삶안에서 자비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 그렇다고 해도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말고 주님 앞에서 내 영혼을 감싸고 있는 욕심과 이기심 등을 찢어 버리고 겸손을 입는 것이고, 그렇게 한다면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는 하느님께서는 자비를 베푸시고, 나가서 우리가 이세상에서 당신 자비의 체널이 될 수 있도록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