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은 참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말씀입니다.  원수를 용서해주는 것도 모자라서 그들에게 맞서지도 말고 오히려 맞고 다른 빰을 마저 치라고 돌리고 속옷을 가져 가려고 하는 데 겉옷 까지 내 주고 , 천 걸음을 강요하는데 2천 걸음을 가주는 것은 우리 세상에서 상상하기 힘든 모습입니다. 우리는 보통 어떻게 해서라도 손해를 보지 않으려고 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가지고, 더 잘하기를 바라기 보다 어려서 부터 학교에서, 운동장에서, 어디에서 든 이웃과 경쟁하고 더 잘하고 더 가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나의 경쟁 상대, 내가 가려고 하는 길에 장애물처럼 생각하기 쉽지요.  오늘 1독서에서 나봇은 그의 포도밭을 가지고 싶은 아합에게 그러한 장애물이었습니다.  그는 그 장애물을 어떻게 하지 못했지만 그의 아내 이제벨은 거짓증인을 내세워 나봇을 죽이고 아합이 그 포도밭을 가지도록 합니다.

이제벨 처럼 하지는 않는다고 해도 우리도 나에게 장애물이 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에게 고통을 주고 내가 강요하는 이들을 내 삶에서 끌어안고 사랑으로 용서하는 것보다 내치는 것이 쉽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으로 살아 갈 수 있을 까요?  먼저 차별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 미국은 인종차별의 문제가 극대화 되면서 많은 문제가 생기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동양인으로서 알게 모르게 이곳에서 살아오면서 차별을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보통 그렇게 받는 건 생각해 봤지, 우리가 차별하는 것은 보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과연 여러분은 사람들을 차별하지 않나요?  인종차별 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이나 여러 모습을 보고 차별합니다.  드러내 놓고 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람들의 마음 한쪽에는 그러한 마음이 있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연히 우리가 차별하는 것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누구든지 받아들이고, 사랑하기를 원하시지요.  하지만 우리는 내가 사랑하고 싶은 사람만 사랑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하면 됩니다.  여러분들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까?  예수님을 사랑하신다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서 예수님을 보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모습과 얼굴을 내 이웃에게 본다면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 까요?

그리고 그것은 억지로 없는 것을 보려고 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 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 살아 계십니다.  물론 성인의 삶으로 그 모습이 잘 드러나는 이들도 있지만, 악행을 일 삼으며 그 모습이 가려져 있는 이들도 많지요.  그래서 악을 일삼는 이들에게서 예수님의 얼굴을 보려면 더 노력이 필요한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그만큼 힘든 것입니다.  하지만 가능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눈을 뜨고 모든 형제 자매들에게서 당신을 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그냥 내 눈에 보이는 대로 형제 자매들을 차별하고 무엇 보다도 내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렇게 사는 모습은 아합과 이제벨의 모습과 많이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내가 손해 보지 않는 정도에서만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삶이 아닌 것이지요.  정말 모든 열정을 다해서 차별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서 나를 내어 놓는 삶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한정된 사람들 만을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으셨고, 그들이 누구든지 무슨 일을 했든지 차별 없이 모든 이들을 위해 고통과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물론 우리모두 아마 한참 모자랄 것입니다.  아직도 형제 자매들 중에 밉고, 보기만 하면 화가 나고, 나에게 한 대로 갚아주고 싶은 이들이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우십니다.  그래서 말씀드린 대로 그들에게서 내가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예수님의 얼굴을 볼 수 있도록 기도하며 은총 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노력한다면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가 아니라 형제 자매들의 모든 잘못을 자비로 되돌려 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