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9일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누군가를 떠나 보내기 때문에 근심이 앞서지는 않지요.  슬프기도 하고 떠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고 모든 일이 잘 되기를 바라는게 보통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세상을 뒤 바꿨으면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떠나신다고 하니 근심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떠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떠남으로 해서, 자신들과 더 이상 함께 하지 않음으로 해서 자신들의 앞날이 불투명 해진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세상을 바꿔 놓지도 않았는데 떠나시면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는가’ 라는 근심일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가까이에서 따라다녔지만 여전히 자신을 먼저 생각하는 세상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따른다 고 하지만 우리의 삶 또한 근심과 걱정으로 가득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일 잊고 세상의 근심에 사로 잡혀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이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이롭다고 말씀하시며 당신께서 떠난 뒤 보내실 보호자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그때까지 보고 함께 했던 것 보다 더 가깝게 계시는 것입니다.  떠난다고 말씀하시지만 그것은 단지 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이지 알아서 해보라고 내버려 둔다는 것이 아니지요.  약속하시는 성령, 보호자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들 안에 머무르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오로와 실라스가 잡혀 매질을 당하고 발에 차꼬를 차고 감방에 갇혀 있었지만 큰 지진으로 의해서 감옥 문이 열리고 사슬이 풀렸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 아니면 불가능 한 것이지요.  그리고 주님께서 바오로와 실라스와 함께 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잡혀서 걱정하고 근심에 싸여 있지 않고, 감옥 문이 열렸 어도 도망가지 않고 주님의 일을 합니다.  간수 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요.  사람의 마음을 그렇게 돌릴 수 있게 하시는 분은 바오로와 실라스가 아니라 그들 안에서 성령을 통해 함께 하시는 하느님이신 것입니다.

만일 그들이 매맞은 것과 잡혀 목숨이 위태로운 것을 걱정하고 근심에 싸여 있었다면 그들의 마음은 간수가 감옥 문이 열려 있는 것을 보고 자결하려고 했던 것과 같이 상황에 휘둘리며 주님의 말씀 듣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활은 언제나 바뀌고 새로운 것이 있고 힘든 일들이 생기며 끊임 없이 변화하는데, 상황에 따라서 우리의 마음이 바뀌며 근심하고 기뻐하고 하기를 반복하며 왔다 갔다 한다면 과연 어떻게 주님의 말씀안에서 살며 그 말씀을 이웃에게 전하고 사랑하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보호자이신 성령을 약속하시고, 마태오 복음 28:20 에서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하고 말씀하셨듯이 우리 안에는 분명히 그분께서 살아 계십니다.  온전히 나를 맡긴다면, 주님께 모든 것을 의지 한다면 어떠한 근심과 어려움, 고통이 와도 흔들리지 않고 주님안에서 살아가며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겠지만, 나를 버리지 못하고 내 중심에서 내 생각대로 살려고 한다면 그러한 어려움들은 모두 근심과 걱정이 될 것이고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자유안에서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의해서 갇혀 있게 되는 것이지요.

지금 이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는 많은 이들에게 육체적 고통과 죽음 만이 아니라 정신 적인 어려움을 주고 있습니다.  그 상황에 휘둘려 하루 하루를 보낸다면 얼마나 피곤한 삶이 되겠습니까?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내 안으로 계속 후퇴해 갇혀 있다면 어떻게 내가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있을 까요?  그것은 주님을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는 가장 큰 죄인 것입니다.

우리 모두 우리와 함께 계신 분, 내 안에 계신 분께 더 귀 기울이며 믿음으로 하느님의 눈에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이 어떻게 변하고 어떠한 어려움이 다가 온다고 해도 변함 없이 주님 안에서 형제 자매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도록 은총 구합시다.